냉전의 긴장감이 팽팽하던 1957년, 옛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다급해진 미국은 이듬해 국방부 산하에 고등연구계획국(ARPA)을 설립했다. ARPA는 실현 가능성이 굉장히 낮은 '초고난도' 기술 또는 이전에 없던 새 기술 연구에 몰두했다. 국가 안보를 위한 원천 기술을 선점, 군사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은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파괴력 있는 기술로 변모했다. 인터넷 전신인 알파넷이 대표 사례다. 알파넷은 ARPA가 설립된 지 10년 넘는 기간을 거쳐 개발된 기술이다. ARPA의 연구개발(R&D) 기조는 후신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으로 이어졌다. DARPA는 초음속 전투기, 인공지능(AI), 무인로봇 같은 원천 기술에 연간 3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시작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DARPA R&D 기조를 모범 사례로 삼았다. 현대 화학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대 그리스 연금술사(알키미스트)를 뜻하는 프로젝트 이름처럼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도전적인 R&D를 장려한다. 그동안 시장에 밀착된 상용화 기술을 주로 개발하던 산업통상자원부의 R&D 정책을 전면 전환했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자동차, 로봇, 첨단장비 등 신산업 5개 분야에 한해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산업부는 올해 상반기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손잡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본 사업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본 사업은 전 산업 분야를 포괄하고, 과제 규모도 6000억원으로 확대한다. 이 같은 시도는 기술과 산업이 융합되는 시대, 근본을 뒤흔들 만한 기술 개발을 장려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남은 것은 전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다. 청와대와 국회도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에 주목해야 한다. 청와대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장기 R&D 프로젝트 기조를 바꿔서는 안 된다. 국회는 국정감사에서 단기 성과를 잣대로 예산 효율성만 강조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 파괴적인 기술을 개발할 R&D 체계가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