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운영, 환자 관리 등에 받아야 하는 인증만 30여개에 달합니다. 전자의무기록(EMR) 인증 역시 자율이지만 인센티브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규제가 될 것입니다.”
8일 서울 화양동 건국대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6회 의료정보리더스포럼에서 병원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정부 EMR 인증제에 우려를 쏟아냈다. 인증 기준, 가이드라인, 인센티브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MR 인증제는 정부가 병원, 기업이 개발한 EMR을 기능성, 상호운용성, 정보보안 등 항목에 맞춰 인증을 부여한다. 병원 규모별 87개에서 최대 155개 인증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무분별한 솔루션 난립을 막고, 표준화된 시스템을 장려해 환자 안전과 병원 IT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작년 시범사업에 착수해 서울대병원, 전북대병원, 평화이즈, 비트컴퓨터 등 8개 병원·기업이 심사 중이다.
병원 CIO들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인증에 따른 인센티브나 장려책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병원 부담만 가중된다고 우려했다.
김경환 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은 “미국은 개발과정부터 EMR 표준을 강조하고, 이 기준을 통과한 제품이 병원에 공급될 경우 보상을 주는 구조”라면서 “기본적인 인센티브를 갖고 접근하지만 우리나라는 접근방식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손장욱 고대의료원 정보전산실장은 “자율인증이지만 병원이 체감하는 것은 필수 인증에 가깝다”면서 “현재 병원이 받아야 하는 인증만 30개가 넘는데, 개발·관리료 등 인센티브 없이는 현장에 느끼는 부담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EMR 인증을 받은 제품을 쓸 경우 수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전제는 이 시스템으로 환자 안전이나 의료 서비스 질이 높아지는 등 성과를 달성한 경우만이다.
장혁재 의료정보리더스포럼 의장(연세의료원 의료정보실장)은 “전산시스템(EMR)과 의료 서비스 질은 직접적이기 보다는 간접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인증 제품 사용에 따른 서비스 질 평가로 수가를 반영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경동 삼성서울병원 정보화전략실장은 “시범사업에 인증 기준을 검증해야 하지만, 이 기간에 개발하다보니 시간이 촉박하고 실제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시범사업에서 도출한 인증 기준을 본 사업에 바로 적용하지 말고, 의료기관이나 기업에 공개해 자체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도 중복 인증 우려를 해소하도록 기준을 현실화하고, 수가 반영 등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인증제 실시 배경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성과가 있어야지 보상을 준다는 기준은 명확히 했다.
오상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ISMS 등 중복되는 기준은 상호 면제되도록 기준을 만들고 있으며, 총 사업 기간을 고려해 셀프 테스트 시간을 주는 것도 검토하겠다”면서 “정부 기본 방침은 EMR 인증에 따른 수가 반영인데, 의료 질 등 성과 지표를 합리적으로 만들어 인센티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정보리더스포럼은 국내 최초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CIO로 구성된 모임이다. 대한의료정보학회, 전자신문이 주도해 2017년 11월 결성, 병원 IT 현안을 논의한다. 이번 포럼에서는 EMR 인증제에 대한 토론과 함께 △EMR 인증 취지 및 방향(이관익 보건산업진흥원 팀장) △EMR 인증 평가 항목 및 방법(박현애 서울대 간호대 교수) △EMR 인증 심사원 양성과 교육 과정 개발(이인식 건국대병원 의료정보실장) 등이 발표됐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