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 간 비핵화 담판이 본격화되면서 2차 회담 대미를 장식할 '하노이 선언(가칭)'이 주목된다. 회담 성패는 두 정상이 도출해 낼 '합의문'에 달렸기 때문이다. 어떤 문구를 명시하는가에 따라 북한 비핵화는 물론 한반도 정세 향방도 갈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 참전 유해 송환 등 4개 사항에 합의했다. 총론 성격이 짙었다. 이번에는 각 항목별 더 구체화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4개 사항을 기반으로 하노이 선언문에 담길 내용을 살펴본다.
◇새로운 관계→연락사무소 설치·여행금지국 해제
북미 양국은 지난해 공동선언 1번 항에 '두 나라 국민들의 평화와 번영에 부합되게 새로운 관계를 설립하는 데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연락사무소 설치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사무소를 두는 방식이다. 개소일에 대한 목표 시점까지 나올 수 있다.
통상 국교 정상화 수순은 '이익대표부→연락사무소→상주대사관 설치' 순으로 이뤄진다. 연락사무소 개설이 합의되면 북미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양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연락사무소 개설을 포함시켰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하노이 합의문에 포함되면 25년 만에 재추진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미국인 북한 여행금지 해제와 문화교류 확대, 대북인도지원 확대 등 조치도 거론된다.
◇평화체제 구축→'종전선언' 또는 '평화선언' 명시
양국은 지난해 '한반도의 지속·안정적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한다'고 약속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을 알리는 '종전선언'이나 혹은 '평화선언' 등이 명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북미 양자 종전선언 가능성을 언급한 데다 문재인 대통령도 '新한반도체제' 구상을 밝히면서 북미 양자 간 종전선언 합의가 확실시된 상황이다.
정전상태를 평화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음 단계인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위한 다자간 실무 기구를 만든다는 내용도 포함될 수 있다. 특히 종전선언은 하노이 선언에 명기될 수도 있지만 별도 부속 문서로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
◇비핵화→'영변 핵시설+알파' 주목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부문은 이번 하노이 선언 핵심이다. 북한이 이미 폐기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검증 작업은 양국이 순조롭게 합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전문가 초청을 통한 현장 방문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북한 핵 시설의 심장부로 불리는 '영변 핵시설' 동결·폐기 여부다. 영변 핵시설을 포함해 그 외 지역 핵물질 생산시설과 이에 대한 검증까지 합의를 이룰지 관심이다. 핵물질 생산시설 검증은 결국 북한 '미래 핵'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사찰과 검증은 북미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에 들어선다는 측면에서 큰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나아가 구체적 시점이 담긴 액션플랜이 나올 수도 있다. 특정 시점 내 핵물질 생산 및 핵무기 제조 시설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한 불능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 담길 수 있다. 제3국으로 반출을 비롯한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처리 방안 마련을 위한 노력까지도 합의문에 명시된다면 '빅딜'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를 신고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면 미국 측은 북한이 강하게 요구해온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석유 쿼터 수입 등을 늘려주는 내용까지 상응조치로 내줄 수 있다.
다만 1차 회담 때부터 미국이 주장해온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등의 단어는 담기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이미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데다 미국이 요구하는 목표는 단기간에 이뤄내기 힘들다. 이에 따라 북한이 내세운 '단계적·동시적' 원칙을 수용하되,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동결하는 'CVC' 전략 내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해 송환→추가 공동 유해 발굴 추진
북미 양국이 합의한 4개 사항 중 미군 유해 발굴·송환 부분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가장 속도감 있게 추진됐다. 미국은 지난해 북한으로부터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 받았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이 부분의 추가 협상은 더 진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제안해 온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이 추진될 수 있다. 미국은 장진호 전투와 운산·청천 전투 지역 등 미군 유해가 다수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공동 유해 발굴을 앞서 제안한 바 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부분이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될 가능성도 높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견인책으로 남북경협을 적극 활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 진전에 따른 남북한 경제협력 재개와 증진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
<표>'하노이 선언문'에 담길 내용 전망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