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화 괜찮은가?” 묻는 英·美, '백기투항' 한국

Photo Image
2012년 10월 말 국회에서 열린 4대 중독예방관리제도 마련 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중독법 반대 플래카드를 펼쳐보이자 관계자들이 나서 제지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영국과 미국에서 게임 질병화 공론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국제보건기구(WHO)가 올 상반기 국제질병분류(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영국 하원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DCMS) 위원회는 27일 '몰입형, 중독성 기술'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 게임과 관련된 잠재적 해악을 연구하는 학자가 증인으로 나선다.

위원회는 앞서 12일 미디어, 콘텐츠 전문가를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주로 게임 질병화에 신중한 입장을 들었다. 이달 들어 게임 질병화를 주제로 긍정 의견과 부정 입장을 모두 청취한 것이다.

이익단체 반대 움직임도 노골적이다. 영국엔터테인먼트산업연맹(UKIE)은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WHO가 ICD-11 최종 버전이 승인되기 전에 '증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게임 질병화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미국 최대 게임관련 협회인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협회(ESA)는 2월 들어 피에르 루이스 회장이 직접나서 DICE 서밋 등 공개석상에서 게임 질병화 반대 주장을 역설 중이다. 루이스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WHO 규제가 게임에 낙인을 찍을뿐더러 오진 위험성과 일부 국가에서는 아이를 가혹한 치료시설로 보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루이스 회장은 가마수트라 등 미국 게임전문매체들과 인터뷰에서 “WHO가 실수하지 않도록 수 년이 걸려도 지속적으로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수위조절을 하며 게임 질병 등재를 미루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ESA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WHO와 미팅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일각에서 “게임질병화 주장에 백기투항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와 정부기관의 공론화 작업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국회게임포럼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책 기구 주변에서 게임 질병화에 속도를 내는 보건복지부 등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부처간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소극 행정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국감에서 “WHO가 최종적으로 게임장애(중독)를 질병화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관장하는 통계청이 “(실무적인 이유로) 2025년까지 반영이 어렵다”는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발언이지만 다른 부처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게임업계 역시 게임 질병화를 앞두고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 위 학회장은 “엔씨소프트는 성인게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기 때문에 이 논의에서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고 넥슨은 매각 이슈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 넷마블은 업계 이슈를 리딩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면서 “자칫하면 아무런 저항 없이 게임 중독을 사회가 공인하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시소 게임/인터넷 전문기자 siso@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