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사와 금융 당국 간 초대형 '빅딜'이 성사됐다.
금융지주사가 강경하게 반대하던 '금융 오픈 플랫폼(API)'을 수용해 주는 조건으로 정부가 금융지주의 핀테크 회사 인수 출자 완화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을 위해 금융사와 당국이 물밑 협상을 통해 대승적 합의를 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 간담회를 열고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금융위는 3대 추진 전략과 9대 추진 과제를 공개했다. 우선 금융결제 시스템을 전면 개방한다. 핀테크 기업에 금융결제망을 전면 개방하고, 공동 결제시스템(오픈뱅킹)을 구축한다. 오픈뱅킹 법제화도 추진키로 했다.
공동 결제시스템은 그동안 은행과 핀테크 기업 간에 갈등을 겪어 온 펌뱅킹 수수료 체계 변경이 골자다. <2018년 10월 25일자 1면, 11월 21일자 21면 참조>
네이버, 카카오페이, 비바리퍼블리카 등 간편결제 사업자는 은행에 건당 400~500원의 펌뱅킹 수수료를 지불해 왔다. 핀테크 기업은 사업이 잘될수록 은행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가 커져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금융 당국이 펌뱅킹 수수료 체계를 오픈 API로 전환하는 방안을 금융사와 협의했지만 갈등만 커져 왔다.
그러나 금융지주사가 오픈 API 전환을 전격 수용해 400~500원이던 수수료를 40원으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더 낮은 수수료를 적용할 계획이다.
앞으로 핀테크 결제 사업자는 은행 등 금융사와 동일하게 금융결제원 API를 통해 자금 이체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결제자금 없이 정보만으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 페이먼트도 전면 도입한다. 지급지시서비스업(가칭)을 도입해 소비자가 로그인 한 번으로 모든 은행의 자기계좌에서 결제·송금을 할 수 있게 된다. 독립적으로 계좌를 발급, 관리하고 자금이체까지 가능한 종합지급결제업(가칭)도 도입된다. 은행이 10여년 동안 보유해 온 계좌 관리권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금융지주사가 보유한 펌뱅킹 독점 권한을 내려놓은 데에는 금융위가 지주사 핀테크사 인수 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지주사가 핀테크 기업을 인수할 때 출자 등 여러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는 합의가 있었다”면서 “오픈 API로 가는 방향에 대해 여론도 있고 하니 지주사 차원에서도 협조하는 걸로 조율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이날 금융 당국은 핀테크 분야 투자·지원 확대 방안을 핵심 사업으로 함께 발표했다. 금융사의 핀테크 기업 출자 제약 해소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권대영 금융혁신단장은 “규제·세제의 시장 친화적 개선을 통해 새로운 결제서비스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금융지주사) 핀테크사 출자 규제 방안을 들여다보겠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금융 당국의 혁신 방안이 카드수수료 체계 인하처럼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할 생태계에 정부가 개입,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오픈 API 개방만 보더라도 금결원 API를 우선 활용하게 된다. 이미 API 사업을 하고 있는 금융밴과 일부 핀테크 기업은 사업 자체가 타격을 받는 역차별이 발생한다.
API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는 핀테크 기업 대표는 “펌뱅킹으로 간편결제를 제공하고 있는 금융 밴사를 배제하고 사단법인인 금결원의 API만으로 강제하는 건 역차별”이라면서 “오픈 API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금융결제망을 운용하고 있는 금융밴사도 당연히 애그리게이션(통합) API사업자로 참여시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도 큰 틀에서 합의한 건 맞지만 세부 이행 방안에 대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논의할 부분까지 모두 발표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은행 관계자는 “API 수수료를 40원으로 책정해서 발표한 부분에 대해 매우 당황스럽다”면서 “당초 논의는 40원 정도 가격에 주거래은행과 이용 기업 간 협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기로 했는데 이 또한 논의 없이 금융 당국이 공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