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칼럼]카카오겟돈(Kakaoged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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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 카풀 갈등은 나라마다 비슷하다. 대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싸움이 얼마나 격했으면, 우버(Uber)와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성한 '우버겟돈(Ubergeddon)'이란 말까지 생겼을까.

'우버겟돈' 함의는 크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할 때 법, 제도, 문화 등 상부구조에 의해서 얼마나 혹독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지를 담고 있다. 전선은 우버 대(對) 기득권 측. 기존 산업 종사자는 물론 법과 제도, 정치, 사회문화, 이를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노동조합, 학계, 시민단체가 우버의 적이다.

공유경제는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지향하기에 기득권과의 마찰은 어쩔 수 없다. 혁신 기술과 서비스가 시장에 진입할 때 기득권 방해는 불가피하다.

첫째, 공유경제는 기존 자원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서비스를 완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찰이 필연적이다. 같은 효용을 갖는 물건과 서비스라면 싸고 저렴하고 편리한 대체재가 시장경쟁에서 승리한다.

둘째, 공유경제는 한 번 구축하면 기존 서비스 산업과의 공존이 힘들다는 점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파괴적이며 약탈적이다. 양보하고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버겟돈에서 택시 산업계는 기존 사회적 지형을 유지시키려는 기득권세력이며 보수세력이다.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를 요구한다.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를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해오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이해당사자를 택시업계와 우버로 치환한다. 이해당사자는 택시업계나 우버가 아니라 시민이다.

우버겟돈이 한창이던 2014년 12월 말, 우리나라는 서둘러 전쟁을 마무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객운수법 위반이며 시가 감시하지 않아서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우버를 불법으로 단정한다. 그게 끝이었다.

세계 각국은 그 사이 혹독한 우버겟돈을 치렀다. 택시업계는 공포에 떨었다. 세계 주요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카고, 런던, 파리, 베를린, 마드리드, 밀라노 등 유럽각지에 파업, 고속도로 달팽이 운전 등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혁신 기술로 무장한 공유경제 앞에 택시업계는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승자는 우버였다.

2019년 '우버 청정국가'에서 카카오겟돈(Kakaogeddon)이 벌어졌다. 승용차 보유자가 자신의 차량으로 출퇴근시간에 유사지역까지 동승자를 운송하는 서비스가 문제란다. 택시종사자가 분신자살을 했고, 놀란 정치권은 또 사회적 합의를 요구했다. 1800년대 중반 영국에서 적기법(Red Flag Law)을 만들던 때와 어찌 그리 유사한지.

대리기사, 택시업계 간 과당경쟁, 서비스 수준은 문제가 아니었다. 택시기사 직업전환제도나 택시 감소 대책에 들어가야 할 세금은 청년수당이나 노인수당으로 풀렸다. '시민의 발'을 자처하며 소비자를 내세웠지만, 소비자는 오른 택시요금만 부담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2019년 카카오겟돈 승리자는 택시업계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권과 택시업계는 카카오카풀을 막았다고 다가올 기술혁신과 4차 산업혁명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더 무서운 자율주행차와 자율주행 드론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카카오겟돈을 펼치고 있는 사이 세상은 운전자가 손도 안대는 레벨4자율주행차 시범서비스를 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진보정권이라면 기존 법과 제도로 새로 다가올 생산력과 생산제관계 변화를 억누르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산업화 시대 법으로 21세기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김상용 주필 sr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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