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48>혁신 딕툼

딕툼 메움 팍툼(Dictum meum pactum). '내 말이 곧 문서다'라는 뜻이다. 어느 고색창연한 건물 벽에 음각돼 있던 이것은 신용을 상징한다. 오래 전 런던증권거래소에선 구두로 주문을 주고받은 후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정리하곤 했다. 동서양 막론하고 모든 상거래 기초는 이 관행 위에 쌓아졌다. 시간이 지나 딕툼은 격언이나 경구란 뜻도 나타내게 됐다.

오래된 런던증권거래소 규칙이 신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처럼 혁신 기업에도 기업 명운을 좌지우지한 딕툼이 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고든 무어의 '무어 법칙'이다. 인텔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용량이 2년마다 두 배가 될 것이라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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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상식은 이 법칙을 순수한 물리학 법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것만큼 순수한 비즈니스 목표도 없다. 이후 인텔 엔지니어와 경영진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결국 인텔은 이 목표를 달성했다. 1987~1997년 11년 동안 연평균 44%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오늘날의 인텔 명성과 영광이 언뜻 물리학 법칙처럼 보인 이 비즈니스 딕툼 한마디로부터 왔다.

이처럼 혁신 기업의 명운을 결정한 딕툼은 얼마든지 있다. 3M의 딕툼은 최근 4년 이내에 출시한 신제품이 연매출 3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네 사람이 각자 100m를 뛴 후 바통 터치를 해야 하는 400m 계주처럼 3M에서는 한 제품이 채 수명도 다하기 전에 새 제품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했다.

어느 경영 구루 표현처럼 이 딕툼은 모든 구성원에게 자신이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이것으로 혁신 기업 3M의 명운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1932년 5월 5일 일본 오사카중앙전기클럽 강단에 선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기업 사명을 발표한다. “대체로 생산 목적이라 함은 사람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풍부하게 제공해 비용을 개선하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 앞으로도 더욱 힘을 다해서 정진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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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마쓰시타그룹이 창립일을 매년 5월 5일로 지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그가 밝힌 사명으로 실상 마쓰시타란 기업이 태어난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딕툼을 그는 기업 도(道)라 불렀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처럼 정작 답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은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뭐냐는 한마디다. 기업 명운이나 역사, 적어도 어느 하루 결말이 딕툼 하나로 정해지는 경우는 흔하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대병을 마주 대하지 않고 비스듬하게 진을 짰다. 이것으로 이날 전투는 정해진 결론으로 흘러갔다. 투항한 농민봉기군을 몰살시키는 대신 함께 기식하며 그들을 감동시킨 그날 중국의 유수(劉秀, 광무제)는 이미 후한을 개창한 셈일지도 모른다.

우리 기업이 새해를 맞아 밝힌 이른바 '신년 포부' 속에 과연 경영진과 직원 모두의 행동을 맞춰 갈 딕툼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가장 손쉽고 중요한 것을 잊은 것인지도 모른다. '1+1=2'라는 수학 원리를 따르면 비즈니스의 도와 딕툼은 물론 혁신이 설 자리는 없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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