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휘감는 대표 어젠다는 '4차 산업혁명'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고도 압축 성장을 거듭한 우리나라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4차 산업혁명은 기회이자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인 클라우드 슈밥이 처음 화두를 던진 후 3년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까지 4차 산업혁명 대응에 국가 자원을 집중한다. 현 정권은 산업 고도화는 물론 사회문제까지 4차 산업혁명 기술로 해결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 전략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평가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과 철학·전문성 부족으로 표류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가지 공통점은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기회로 이용해야 하며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의식이다. 전자신문은 인공지능(AI), 차세대 통신, 자율주행 자동차, 바이오,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대표 기술 전문가를 초청, 문재인 정부 전략 이행 점검과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진오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
△김진형 인공지능연구원(AIRI) 원장
△김태순 신테카바이오 경영총괄 사장
△박성욱 모빌아이 지사장
△장영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
※사회=김원석 전자신문 성장기업부 부장
◇사회 (김원석 전자신문 부장)=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13개 주력 육성 분야를 선정했다. 이행을 위한 전담기구 설립과 부처별 세부 전략을 수립하는 등 힘쓰고 있다. 그간 이행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진형(AIRI 원장)=현 정부는 경제적 가치에 이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 분야에 아쉬움이 크다. 모두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참여 주체는 움츠리는 상황이다. 기업은 물론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있어 정부 역할은 제도다. 산업 육성에 맞는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하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다. 대표적인 게 카풀 논란이다. 산업을 만들기 위해 규제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택시 기사 생계를 위해 제도가 퇴보하는 느낌이다.
◇김진오(광운대 교수)=현재 우리나라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주요 기술을 한데 모아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수준에 그친다. 4차 산업혁명이 모든 산업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이중에 우리나라가 정말 해야 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능'과 '연결'이다. 지능을 가진 작은 장비가 산업 현장에 적용되고 도시로 확장한다. 로봇 분야에서는 이것을 '라지 스케일 로보틱스(Large Scale Robotics)'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를 넘어 개인 맞춤형 상품 생산, 제작 수요가 확산되면서 나왔다. 개인은 각기 다른 주체지만,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의식주를 넘어 교육 등 서비스 전반이 개인 맞춤형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현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전략은 이런 부분을 간과한다.
◇김태순(신테카바이오 사장)=4차 산업혁명이 대표하는 기술혁신이 전 세계 화두다. 세계가 혁신을 추구할 때 우리나라는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은 물론 미래 사회에 바이오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규제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바이오 분야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 기업 움직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며 혁신적이다. 글로벌 1위 클라우드 기업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병원이 세 번째로 주력하는 고객군이다. 우리나라도 클라우드 병원정보시스템(HIS)을 개발하기 위해 국가전략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갈 길이 멀다. 클라우드로 편의성과 보안성을 높이자는 취지지만, 도입을 주저한다. AWS가 우리나라에 의료분야 사업을 한다면 관련 규제만 15개에 달한다. 2년이 지났지만 규제 개선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가 합리적 규제를 마련한다면 글로벌 바이오 기업도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다.
◇장영민(국민대 교수)=문재인 정부가 선정한 4차 산업혁명 13대 분야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에도 투자했던 영역이다. 현 정권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도 눈앞에 뒀다. 기술적으로는 성숙됐지만 ICT 융합영역에는 의문이 따른다. 여전히 서비스 청사진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잠잠하다.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의 많은 4차 산업혁명 전략이 범부처 차원에서 이뤄진다. 단절됐던 정책 입안, 수행 등을 해소해 부처간 협업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자는 취지다. 실제 많은 4차 산업혁명 대표 기술은 단일 요소라기보다는 융·복합 영역이다. 범부처 차원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처 간 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 같다. 연구 산실인 대학조차도 단과대학 차원에서 교류가 부족하다. 융합하고 교류하는 정책이 미진하다.
◇박성욱(모빌아이 지사장)=4차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에 의한 산업, 정치, 사회적 변화를 설명할 키워드다. 우리는 혁신의 큰 변화를 마주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전략을 수립, 이행하는데 있어 과학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지원 정책은 부족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독일, 일본 등 기술 강국의 성숙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가 강점으로 여겨왔던 가격 경쟁력 역시 중국에 밀린다.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성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율주행 자동차도 13개 핵심 영역 중 하나다. 이 영역만 놓고 보면 방향과 전문성이 부족하다. 성과가 어떻게 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긍정적 전망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예상된다. 정책 입안자인 정부보다는 현업의 전문성이 훨씬 뛰어나다. 4차 산업혁명 토대를 마련하는 전략 수립 과정에는 국내외 민간 전문가와 협업해 거시적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사회=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국가 차원에서 자원을 집중한다. 하지만 경제, 산업, 사회적으로 혁신 체감도는 떨어진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김진오=로봇 분야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협동로봇'이다. 인간의 영역을 로봇이 대신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뜻한다. 4차 산업혁명 관련해서도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
문제는 정부 규제로 산업 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산업 현장 로봇을 자율인증 받도록 했다. 협동로봇이 주목 받으니 이것을 사용하는 현장은 인증 받도록 규제를 만들었다. 이중규제가 되는 셈이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로봇 관련 인명사고가 나면서 안전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규제로 막을 수 없어 의무화하지는 않았다. 대신 도시별로 자율적으로 선택하게끔 했다. 이런 규제가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막는 요소다.
◇김진형=과거 인터넷 붐이 불면서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공룡 기업이 탄생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이 온 나라를 휘감지만, 정작 이것으로 큰돈을 번 기업은 거의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바람을 타고 여러 분야에 자원을 분배한 것이 큰 원인이다. 제한된 내수를 넘어 글로벌 경쟁으로 나가야 할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선정해 집중 투자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을 보자. 일본은 AI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산업, 경제, 사회 이슈 전반에 AI를 확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를 벌인다. 현 정부가 집중한 스마트시티도 가치가 있지만, 산업적 파급력이 큰지는 의문이다. 국가 전체에 퍼지는 효익이 큰 것 중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자해야 국민이 체감한다.
◇김태순=우리나라에서 단군이래 바이오가 이렇게 뜬 적은 처음이다. 글로벌 제약시장 규모는 연간 1400조원이 넘는다.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나라 5대 산업 규모를 모두 합쳐도 1000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 크다. 매출도 중요하지만 매년 안정적으로 수익을 가져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규제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바이오 분야에서 규제는 '규제 과학'이라고 불린다. 단순히 규제를 푸는 게 아니라 국민 보건과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합리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규제 과학에 전문성과 의지가 떨어진다. 우리나라 사회, 정치, 경제 특수성을 고려한 규제 과학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R&D)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글로벌 성공 가능성도 높인다. 세계는 지금 규제 과학에 기반한 국가 차원 전략 수립과 유전체, IT 등 융·복합으로 혁신에 나선다. 우리는 여전히 우물 안에 갇혀 글로벌 바이오 패권에 합류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장영민=그동안 통신은 ICT 산업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정부 자원이 풍부하게 투입됐고, 관련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 교수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지원은 물론 대학교 학생 수도 줄고 있다. 차세대 통신기술이 주목 받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침체에 빠진 셈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국민 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리딩할 영역에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5G 시대를 맞아 기회를 잡지만, 화웨이라는 변수에 불확실성이 있다. 우리가 5G로 대변하는 차세대 통신에 열광할게 아니라 6G 등 또 다른 성공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세대 통신인 CDMA를 퀄컴에 전수 받아 산업 토대를 일궜다. 이제는 6세대 통신에 대한 기술 투자가 있어야 한다.
◇박성욱=미국에서는 운전자가 주차에만 연간 300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다. 최근 주목 받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면 2030년까지 기존 자동차 제조사 수익 80%가 줄어든다고 한다. 또 자동차 사고 역시 2030년에는 지금보다 90% 줄어든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자율주행뿐 아니라 공유경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집을 쪼개서 에어비앤비가 나왔고, 차를 쪼개니 우버가 나왔다. 이제는 자동차뿐 아니라 노동을 쪼개 판매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현실은 조금 다르다. 카풀로 대변되는 대립 현상은 전통 기득권(택시)과 새로운 사업자(카풀)간 정면 충돌 현상이다. 기술 개발에 따라 기득권 박탈 위기감이 커지면서 사회 갈등이 커진다. 그렇다고 단순히 새로운 기술 도입을 가로 막는 행위로만 봐서는 안된다. 기술 관점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기존 서비스, 상품, 노동의 해체와 격차를 줄이는 고민을 해야 한다. 정부, 정치권이 갈등을 현명하게 푸는 방법에 따라 국민 체감도는 높아질 것이다.
◇사회=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이 우리나라 전 영역에 안착, 확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새로운 산업, 경제적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에서 성공적인 4차 산업혁명 전략을 이행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나.
◇장영민=앞서 얘기 나왔듯 카풀이 화두다. 전통산업에 해당하는 택시산업은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면서 연일 시위를 이어간다. 반면 공유경제에 기반한 신산업 육성과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주장하며 서비스를 찬성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결국 규제를 쥐고 있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앞으로 이런 전통과 새로운 서비스 간 충돌은 더 많아질 것이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카풀처럼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서비스는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시범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검증 작업을 통해 서비스 품질은 물론 어떤 사회현상을 야기할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박성욱=국가마다 의사결정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 미국은 경제적 요인, 일본은 사회적 요인을 우선한다. 우리도 어떤 방식으로 지속 발전할지, 약자를 보호할 장치는 어떤 게 있는지 살핀다. 카풀은 다소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해고되기 어렵지만, 일단 해고되면 보호장치가 열악하다. 택시 노동자가 카풀을 반대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카풀과 같은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서비스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규제만 강조하는 것도 한계다. 카카오택시가 생기면서 택시 산업이 약 30% 커졌다는 조사를 봤다. 카풀도 윈윈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다만 이해관계가 다르고 새로운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커진다. 기술 개발, 규제 개선도 좋지만 전통과 새로움 간 협상, 타협 과정이 정립돼야 한다.
◇김진오=기존 산업이 갖는 기득권, 이익구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와 혁신이 자리 잡기 어렵다. 지속적인 대화, 타협으로 모두 윈윈하면 좋겠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은 서비스 선택권을 주면 된다. 개인이 아니라 지자체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받아들일 지 말지를 결정하게 하면 된다. 원자력 폐기처리 시설을 예로 들자. 혐오시설에 가까운 폐기물 시설은 지자체가 주민 의사를 반영해 유치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는 지자체 선택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고, 주민도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 카풀 등 새로운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자율주행 택시는 네바다, 캘리포니아, 택사스 주정부가 선택 시행한다. 전제 조건은 지자체와 주민간 공감, 혁신 서비스를 운영할 기술 분권화, 검증, 인프라 등을 갖춰야 한다.
◇김진형=강력한 규제 개선 의지가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에서도 규제 프리존, 규제 샌드박스 등을 제시하면서 시범적용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무력화됐다. 관련법에서는 기존 규제를 벗어나는 혁신을 명시했지만, 실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 관련 부처 허가를 받으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에 직면한다.
카풀 역시 이해당사자 간 합의 끝에 시행됐다고 가정하자.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는 사고 예방을 이유로 또 다른 규제를 만들 것이다. 이러면 서비스 의미가 없어진다.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등 영리병원 설립도 수 년간 끌다가 이제서야 개설 허가가 났다. 강력한 규제 개선 의지 없이는 어렵다.
◇김태순=우리는 혁신 서비스가 정부 손을 거쳐 변형된 것을 많이 봐왔다. 이해당사자 간 합의 끝에 서비스 시행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최종 결과는 수요자가 원했던 방향과 완전히 달랐던 사례가 적지 않다. 서비스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소비자 목소리는 빠져 있는 듯하다. 우버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산업계에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우버나 카풀 등 서비스를 선택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맞는지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사회=4차 산업혁명의 성공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13개 영역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가장 잘 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영역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진형=우리나라 경제가 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반도체 힘이 크다. 하지만 주도권을 우리가 이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는 상황에서 반도체 주도권도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우수 인재가 많이 가는 영역이다. 과거 공학인재가 많이 배출됐기에 전자공학 산업이 부흥을 맞았다. 지금은 '의료'다. 우수한 두뇌가 여전히 의대에 몰린다. 의료를 집중해서 전략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인력은 몰리지만 산업적으로 키우려면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의료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원격의료, 영리병원 등 많은 이슈가 공공의료라는 틀에 묶여 산업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못 찾고 있다.
◇장영민=제조업 위기라고 우려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적 기반은 제조업이다. 제조업 없이 혁신산업을 육성하기는 어렵다. 차세대 통신 영역도 우리나라는 글로벌 선두 수준에 이르렀다. 반도체 등 제조업도 순항한다. 스마트시티, 신재생 등 13개 전략 분야도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제조업 기반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대학도 변화가 필요하다. 해당 학교 대부분이 SW만 다룬다. SW 중요성이 부각되지만, 대부분 하드웨어(HW) 기반에서 운용된다. HW에 대한 기반 지식 없이 SW만 다루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김태순=산업이 성장하는 것도 타이밍이다. 고객 니즈, 기술 개발, 자본 등 모든 게 맞물려야 산업이 성장한다. 이런 점에서 바이오는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단순히 투자 자본이 집중되고 주식 가치가 높아졌다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 분야 전문인력 역량이 세계 수준이다. 정부가 규제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개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최근 구글, AWS 등 글로벌 IT 기업은 다국적 제약사, 바이오 테크 기업과 협업한다. IT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혁신적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한다. 우리나라도 세계 수준 IT 역량을 확보한다. 두 영역을 조화롭게 융합해야 한다.
◇박성욱=자동차가 플랫폼이 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자율주행이 상용화, 현실화되려면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적 합의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년에 4만명이 도로에서 사망한다고 가정하자. 자율주행으로 3만명 정도 줄일 수 있다. 이렇다고 해서 기술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1만명이 여전히 사망 위험에 있는데, 40명가량으로 줄이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자율주행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제도와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고 우리나라만의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이번 좌담회로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 전략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김진형=정부는 가능성을 실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한 사람, 기업이 성공해 보상을 받는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를 상대로 애국심에 호소해 일해 달라는 시대는 지났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혁신 시대에 우리만의 플랫폼을 갖춰야 한다. 개별 기업이 성공하겠다고 문을 닫으면 함께 도태된다. 글로벌 시대에는 해당 영역별 최고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것을 연결할 4차 산업혁명 시대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김진오=제조업 위기시대다. 그렇다고 제조업을 버릴 수는 없다. 결국 제조업의 체질 개선이 중요한데, 맞춤형 제조로 선회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맞춤형 제조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기존 제조업을 포함해 바이오, 헬스케어 등 맞춤형 생산 효과가 높은 영역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재편을 시도해야 한다.
◇김태순=바이오산업에서 IT가 화두다. 과거 유전자 분석에 들어가는 돈이 3억~4억원에 달했다. 이제는 IT 발달로 300만~400만원이면 가능하다. IT 혁신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결국 우리가 잘하는 IT를 다른 산업에 접목시키는 게 바이오산업은 물론 4차 산업혁명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합리적 규제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박성욱=모빌아이는 시각화 기술 영역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한다. 핵심 장비인 카메라는 중국 제조업체와 협업을 많이 한다. 모든 카메라 장비를 중국 기업 제품으로만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에서도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많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대응에 노력하지만, 단순한 투자를 넘어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협업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장영민=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제조산업을 인텔리전트화해야 한다. 인문과학자, 사회과학자, 공학자가 함께 모여 '지능화 코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을 제안한다. 제조업과 IoT 기반 데이터 산업을 함께 융합하는 범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면 한다.
정리=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