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업계를 겨눈 금융당국의 칼이 매섭다. 연초부터 이어진 회계조사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코스닥 1위, 코스피 4위 대형 바이오기업까지 감리대상에 올랐다. 자본시장에서는 바이오 거품론, 불신론이 팽배해진다. 산업계는 금융당국의 연이는 회계조사에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정부의 산업 육성 의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장 투명성과 신뢰도 제고, 산업 육성 간 균형 잡힌 회계기준 적용 목소리가 높다.
◇연이은 회계부정 논란, 바이오 업계 칼바람
유례없는 바이오 산업계 회계부정 논란은 4월 금융당국이 10개 바이오·제약사 테마감리가 촉발했다. 금융감독원은 바이오 업계가 연구개발(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면서 영업이익을 부풀렸다고 판단했다. 일양약품, 차바이오텍, 씨엠지제약, 제넥신, 이수앱지스 등 10개 기업이 특별 감리를 받았다. 대부분 경징계에 그쳤고, 임상3상(신약)과 임상1상(바이오시밀러)부터 자산화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마무리했다. 10개에 달하는 바이오기업이 감리 대상에 오르면서 시장 충격은 컸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분식회계 혐의로 금융당국 조사를 받았다. 두 기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이오기업인 동시에 각각 시총 기준 코스피 4위, 코스닥 1위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그룹 승계구도까지 확산돼 회계이슈를 넘어섰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역시 수출 1위 의약품 공급업체로 승승장구하다 날벼락을 맞았다. 최근 설립 60년이 넘는 경남제약까지 매출 채권 허위 계상 등으로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상장폐지 결정을 받았다. 모호했던 R&D 자산화 처리방법에서 시작된 금융당국 조사가 분식회계, 그룹사 승계구도까지 확산되면서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왜 바이오 업계만? 가파른 성장 속 금융당국 주시
유례없는 바이오 업계 회계부정 논란 원인은 획일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차바이오텍 등 특별감리 사례처럼 그동안 모호했던 규정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헬스케어 사례는 재무상 해석을 놓고 이견이 심하다.
공통적으로는 바이오산업 성장이 배경에 있다. 바이오산업은 오랜 R&D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 등 성과를 거두면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는다. 돈이 몰리는 산업이다. 금융당국이 그동안 성장이 더뎠던 바이오산업을 크게 주시하지 않았지만, 최근 급성장하면서 자세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조완석 태성회계법인 상무는 “바이오업계에 유례없는 회계논란은 산업 성장과 저변이 확대되면서 금융당국도 면밀하게 주시하기 때문”이라면서 “2~3년 전과 비교해 바이오기업에 회계 규정이 엄격해지고 있는데, 금융당국도 과거 한 두 사람이 논의했던 것을 이제는 여러 사람이 들여다보면서 사례를 분석하고 특이사항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바이오산업 생산규모는 처음으로 10조원(10조1264억원)을 돌파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7.8% 고공 성장세다. 오랜 R&D 단계를 넘어 기업이 돈을 벌기 시작한 게 무엇보다 고무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매출 발생기업 비율은 69.1%에서 지난해 72.4%까지 늘었다.
창업과 투자도 활발하다. '2017 바이오 중소·벤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만 300개가 넘는 바이오 벤처가 창업했다. 사상 최대를 기록한 2016년 479개보다는 줄었지만, 창업 열기는 이어갔다. 올해 바이오 벤처캐피털 투자 역시 10월 기준 7016억원으로, 지난해 총 투자액(3788억원)보다 85% 늘었다. 전 산업에 걸쳐 벤처캐피털 투자가 가장 많이 몰린 산업도 바이오다.
산업 성장에 따라 투자금이 몰리고, 매출이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이 주시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적용했던 회계기준을 강화한다. 반면 바이오기업은 대다수가 R&D 중심이다 보니 재무·회계 부문이 약할 수밖에 없다. 시한폭탄을 안고 사업을 영위한 셈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중심 업종이다 보니 회계처리 미숙함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바이오 분야에 이해가 깊은 회계전문가가 부족한 데다 산업성장에 따른 회계기준 적용이 엄격해지면서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산업육성 저해” vs “발전 위한 성장통”
금융당국 움직임을 놓고 이견이 엇갈린다. 연이은 바이오업계 감리로 산업이 크게 위축된다는 우려다. 한편으로는 산업이 성장궤도에 오르면서 투명성과 신뢰성을 갖추는 성장통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쪽에서는 기업 피로도가 극심하다고 하소연한다. 영업이익 부풀리기, 분식회계 등 회계부정으로 낙인찍혀 거품론까지 등장했다. 기업 영업과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역시 증선위 처분과 상장유지라는 엇박자를 보면서 조사 의미와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R&D 자산화 논란은 바이오산업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데다 그동안 모호했던 기준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헬스케어는 고의 분식회계 여부를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금융당국의 잇따른 감리는 회계법인에 강력한 회계감사를 주문하는 시그널인 동시에 산업을 위축시키는 요소”라고 비판했다.
올해 유독 바이오·제약 기업 회계 조사가 많았지만, 산업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상 기준 정립과 적용이 모호했던 부분을 이 기회에 개선해야 한다는 이유다. 다만 여전히 금융당국이나 회계법인에 바이오산업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부족한 만큼 산업계와 교류가 필요하다.
조 상무는 “많은 바이오기업이 연구에만 몰두하다 보니 회계나 규제를 간과했고, 금융당국도 어느 정도 용인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제조, IT 등 그동안 우리나라 성장을 이끌었던 산업도 감리, 조사 등 성장통을 겪으면서 한발 짝 나갔기 때문에 바이오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