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018년 '과거제'는 여전히 유효할까?

“왜 고시를 하려고 하나? 기업이 훨씬 좋다.”

얼마 전 만난 대기업 임원이 모교에 초청돼 그 자리에 참석한 후배에게 했다는 말이다.

국내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이 대학은 분야별로 진출해 있는 선배를 초청, 진로 관련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 대기업 임원 논리는 간단했다. 행정고시 등 어렵게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도 이전처럼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연배와 비슷한 동문들 상황을 비교해서 한 말이다.

현실도 이 임원의 말과 다르지 않다.

공직 사회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부처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상 국장으로 승진한 뒤 1급 실장까지 5년 안팎에 퇴임하는 분위기다. 이때 나이가 보통 50대 초·중반이다.

가장 활발하게 일할 나이다.

이전에는 퇴임 후 유관기관이나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쉽지 않은 분위기다. 공직자윤리법에 퇴직일로부터 3년 동안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한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특정 기관 취업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부처별 차이가 있지만 통상 중앙부처 4급 이상은 대상이 된다.

물론 취업 제한 여부 확인 및 취업 승인 신청을 통해 심사를 받아 취업이 가능한 예외 조항이 있고, 심사 통과율도 높지만 실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물론 고위 공직은 퇴임 후 연금이나 여러 혜택이 따른다. 일반 국민보다 훨씬 나은 노후도 보장된다. 그러나 기업을 택했을 때 얻는 이득에 비한 박탈감이 더 크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굳이 공직에 몸담을 필요가 있느냐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을 하려면 오히려 정년까지 근무가 수월한 7, 9급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푸념도 맥을 함께한다.

실제 최근 중앙부처 과장급 이하 공무원의 민간 기업 이직이 크게 늘었다. 승진해서 연관된 업무 범위가 늘어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국장 승진을 앞두고 급하게 퇴직한 사례까지 목격했다.

세태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수십 년 쌓아 온 국가의 역량이 너무 일찍, 쉽게 소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가 시스템을 한 번쯤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을 특정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특정 직급 이상으로 채용하는 각종 고시와 특수학교(경찰대, 사관학교) 등의 무용론이 대두됐다. 공직으로 나가는 길은 단순화하고, 조직 내 성과나 역량에 따라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다. 생각해 볼 문제다.

현실론에서 접근하면 공직 진출입도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민간에서 공직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그 관문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또 한 번 공직에서 물러난 뒤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직에서 민간으로 이직하는 것도 좀 더 수월해야 한다. 민·관 유착 등의 우려는 제도로 보완하면 된다.

물론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을 무시한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시스템이 최선인지는 아주 먼 미래를 보고 한번쯤 고민해 볼 문제다.

2018년 현재 아직도 과거제(또는 일본식 관료시스템)가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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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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