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는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에 발맞춘 빠른 속도감이 반영됐다. 전문성과 리더십을 검증받은 젊은 경영진을 과감히 그룹 미래 기술 전략을 책임질 핵심 인사로 발탁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ICT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강조해왔다. 이번 인사에도 연구개발(R&D)과 미래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반영했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과 지영조 부사장의 1년 만에 자리 변화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BMW 출신 비어만 사장은 사장 승진 1년 만에 현대·기아차 신임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됐다. 기술 경쟁력을 책임질 신임 연구개발본부장에 대한 인사는 그룹 안팎에서도 이례적이란 의견이 나온다. 연구개발 총책임자에 외국인 임원을 앉힌 것은 현대차그룹 역사상 처음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디자인최고책임자(CDO),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을 상품전략본부장으로 각각 임명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푸조와 폭스바겐그룹에서 다양한 신차 디자인을 담당했던 스타급 디자이너다. 쉬미에라 부사장은 BMW M 북남미 사업총괄 출신이다.
비어만 사장은 2015년 현대차그룹 합류 이후 신차 성능 개선에 기여해왔다. 고성능차 사업 성공적 시장 진입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과 탁월한 소통역량을 지녔고, 연구원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리더십을 확보한 인물로 전해졌다.
비어만 사장은 적극적인 소통과 협업을 바탕으로 연구개발본부 일하는 방식 변화를 주도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평소 강조한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은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등 혁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새로운 R&D 조직문화 정착을 이끌 것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 인도, 중국 등 글로벌 R&D 조직들과의 네트워크를 촉진, 연구개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삼성전자 출신 지영조 부사장의 사장 승진으로 현대·기아차 전략기술본부 위상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전략기술본부는 그룹 내 신사업들을 주도하는 핵심 부서다. 전략기술본부는 지 신임 사장이 총괄이지만,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관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략기술본부가 추진하는 스마트시티와 모빌리티, 로봇,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에 대한 핵심과제 수행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올해 초 로봇과 AI를 5대 미래혁신 성장분야 중 하나로 선정한 현대차그룹은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전략기술본부 산하에 로봇 분야를 전담하는 '로보틱스팀'을 신설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한 에너지 저장장치(ESS) 개발과 글로벌 차량공유업체 투자도 전략기술본부가 주도하고 있는 신사업이다.
연구개발본부와 전략기술본부 변화와 역량 강화 기조는 향후 부사장 이하 정기 임원 인사에서도 이어져 현대차그룹 미래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외부 인재에 대한 파격 인사가 반영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연구개발본부와 전략기술본부 인사는 실력 위주의 인재 중용을 통한 미래 핵심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