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아현지사 화재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 보내는 '경종'으로 해석된다. 통신이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인프라'가 돼 낡은 기준이 적용되는 통신 운영 체계 전반을 뜯어고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보상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한편 소방법과 통신국사 이중화 문제를 집중 논의해야 한다.
◇원인은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한 건 24일 오전 11시 12분이다. 화재로 케이블 150m가 타고 건물 내부 300㎡가 그을리는 피해가 발생했다. 직접 재산 피해는 80억원가량인 것으로 추산됐다. 아직까지 정확한 화재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25일 시작한 소방당국 합동 현장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화재가 난 곳은 KT 아현지사 지하 1층에 위치한 통신구다. 통신구는 통신장비와 광케이블 등이 밀집한 지하도로, 여기서 출발한 유선망이 가정이나 기업 등 지역 내 가입자에게 전달된다.
전체 통신망 가운데 '말초신경'에 해당한다.
이 통신구에는 전화선 16만8000회선과 광케이블 220세트가 설치돼 있었다. 화재로 서울 마포 일대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IPTV, 카드결제 등이 이틀 이상 먹통이 됐다.
화재 복구에는 일주일 이상 소요될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산했다.
◇왜 피해 컸나
피해가 커진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 작용했다.
우선 소방 시설이 부족했다. 통신 설비가 집중된 장소인데도 스프링클러 없이 소화기만 비치했다.
현행 소방법은 통신구 길이가 500m 이상일 때만 스프링클러 등 연소방지설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는 길이가 150m 미만이라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다만 KT가 자체적으로 통신구에 50미터마다 화재를 감지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을 설치해 화재를 조기 감지할 수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토요일 KT 아현지사 근무 인원이 두 명에 불과했던 점이 피해 확산에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이용자 피해가 컸던 것은 백업(이중화)이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통신국사를 A~D 4등급으로 나누는데, 아현지사는 소규모 D등급이라 백업 의무가 없는 곳이었다.
가입자 회선을 관리하는 곳으로 통신사업자 간 이중 접속을 규정한 상호접속제도와도 무관하다.
멀리서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통신구에서 화재 연기가 지속되면서 복구반 접근이 늦어진 것도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다.
KT 관계자는 “고객 선로를 이중화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게 하는 통신사도 없다”면서 “행정, 금융, 치안망 등은 백업이 돼 있어 곧바로 복구했다”고 설명했다.
◇과제는
근래 보기 힘들었던 대형 통신 장애가 발생하면서 후속 조치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고객 피해보상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KT 이용약관에 따르면 이동전화와 초고속인터넷은 시간당 월정액과 부가사용료 6배를 기준으로 고객과 협의해 손해배상을 하도록 돼있다.
IPTV는 시간당 평균요금 3배를 보상한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카드결제와 고객용 와이파이 등이 불통이 되면서 영업에 피해를 입은 상공인이 많다. 아직까지 통신 분야에서 영업 피해를 이유로 보상한 전례가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소방법 규정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유무선 통신과 IPTV, 카드결제는 물론이고 금융·행정·치안 등 생활 전반이 통신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통신국사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규모가 작아도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규모에 관계없이 통신국사 소방설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통신국사를 백업하는 것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일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통신사는 가입자 회선을 담당하는 소규모 지역 통신국사에 대해 백업을 하지 않고 있다.
가입자마다 회선을 두 개 사용하는 것이어서 투자부담이 너무 크다. 국가 통신망이나 기업 중요통신망만 백업을 하는 이유다.
통신 전문가는 “한 통신사가 통신사 두 개를 운영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성목 KT 사장은 “D등급 통신국사를 이중화 백업하는 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화재 등 비상사태 발생 시 타사 망을 공유하는 방법을 정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