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내 환기 설비인 '공기순환기'에 대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기순환기가 중기간 경쟁제품이 되면 공조시스템 및 시스템에어컨과 연계가 어려워지고, 수요자 비용 상승과 에너지 효율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조시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도 제한이 생긴다. 현재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을 놓고 부처간 협의 중으로, 업계는 글로벌 시장 환경을 고려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공기순환기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에 대해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기순환기는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는 설비다. 과거 수입에 의존했지만, 2000년대 이후 국산화 노력으로 현재는 국내 기업이 주도한다.
대기업은 공기순환기를 중기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면 공조, 시스템에어컨 사업에 타격이 예상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은 공기순환기와 시스템에어컨을 연계해 최대 40% 에너지 절감이 가능한 연동 기술을 갖췄다. 반면 중소기업은 이 기술력 수준 때문에 에너지 절감 효과에서 차이가 난다. 때문에 기술적 차이를 무시하고 중소기업 제품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수요기관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고효율 제품인 가변형 히트펌프냉난방기를 조달시장에 등록한 업체는 모두 대기업이다.
차세대 환기 솔루션 분야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도 타격이 우려된다. 초고층 빌딩 공기 순환기 기술, 실내공기질 개선을 위한 공기 순환기 연동 알고리즘, 환기 적용 헤파(HEPA) 필터 설계 등은 대기업 투자로 개발·보급해왔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도 제한이 생긴다. 세계 공조시장 1위인 다이킨을 비롯해 미쓰비시 등 글로벌 기업은 공조시스템과 공기순환기를 연계한 고효율 시스템을 갖췄고, 기술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의 국내 공기순환기 시장 진입을 차단하면 융복합 기술 개발과 활용에 차질이 예상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에너지 절감 정책, 실내공기질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에 따라 고효율 환기 솔루션이 갈수록 중요해진다”면서 “국내외 시장 환경은 보지 않고 중기 보호만을 위해 중기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면 국가 산업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판로를 개척한다는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공공조달 공기순환기 시장은 중소기업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업계 1위인 E화학의 경우 올해 상반기 시장 점유율이 43%에 달한다. 때문에 판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제도 취지와 맞지 않고 특정 중소기업 시장지배력만 강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센서와 LED 등에 이어 드론도 중기간 경쟁제품이 됐고, 올해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3D 프린팅 등 차세대 융복합 산업 분야까지 중기간 경쟁제품 지정을 추진한다”면서 “중소기업 주장만 듣고 대기업 손발을 묶는 것은 미래를 보지 못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 산업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까지 고려해 선별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