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개념화된 자기' vs. '맥락으로서의 자기'

▷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시도가 필요하다

▷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고 현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됐다면 나는 교장 선생님일까, 경비 아저씨일까? 장교로 전역하고 회사에 입사했는데, 군대 있을 때는 감히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신입사원이라고 나를 햇병아리 취급한다. 나는 장교의 마인드로 살아야 할 것인가, 신입사원답게 자세를 낮춰야 할 것인가?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고 미움 받았던 열등생이었다. 어렵게 취직이 돼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연애도 잘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변화하고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하고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나의 현재는 과거에 의해 형성된 것일 텐데, 과거를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얽매여 살 수도 없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나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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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수용전념치료(ACT), '개념화된 자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ACT)는 수용(Acceptance)과 전념(Commitment)을 강조하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그 자체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문제를 없애는데 주력하기보다는 문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심리적 고통(Pain)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면서 더 큰 괴로움(Suffering)을 겪게 된다고 본다.

'개념화된 자기(conceptualized self)'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자기를 뜻한다. '나'를 '교장 선생님'에 융합해 '나=교장 선생님'으로 여기고, '나'를 '자신감 없는 나'에 융합해 '나=공부 못했고 미움 받았던 열등생'으로 여기는 것이다. 개념화된 자기는 '직업적인 나', '관계성 속에서의 나', '심리적인 나' 등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개념화된 자기가 과거의 나를 결정하는데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나를 결정해버린다는 것이다. 나와 개념화된 자기가 융합됐기 때문인데, 탈융합되기 전까지는 개념화된 자기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는 사적 사건들이 일어나는 맥락을 지켜보고 지금-여기의 경험을 조망하는 자기를 뜻한다. 현재의 나는 경비 아저씨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고, 과거에 열등생이었어도 현재는 충분히 일을 잘 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가능성과 마음을 열어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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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시도

실제 생활에서 내가 스스로 느끼는 갈등과 어려움,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자아에 대해 느끼는 고민과 갈등의 원인은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만 했어도 같은 성적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생이 됐을 때 평범한 성적을 내거나 하위권에 머무르는 자신을 보며 무척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전교 1등이라는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나는 용기와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 같지 않은 지금의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듣고 과거의 나, 한 때 잘나갔던 나를 모두 부정하고 없애려는 시도 또한 위험하다. 개념화된 자기에 융합된 나를 그 융합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지,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인하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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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때 '한 때 잘나갔던 내가 이런 취급밖에 못 봤나'라는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고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울 수도 있다.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도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하면서 항상 옛날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나면 나를 지탱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내면에 본인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데, 불필요한 걱정이다.

개념화된 자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 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현재가 힘들어지고 미래가 나아질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과거 잘나갔던 기억이 현재의 나를 얽매는 족쇄라는 점을 인정하고,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나답게 살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과거보다 잘나가지 않는 현재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고, 잘나가지 못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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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롭게 성장할 때 관객들은 감동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개념화된 자기에서 탈융합해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수용하고 인정했기 때문인 경우가 무척 많다.

현재 상영 중인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서 한세계(서현진 분)의 개념화된 자기가 톱스타 배우라면, 맥락으로서의 자기는 한 달에 일주일 타인의 얼굴로 살아가며 그로 인한 오해로 인해 주연이 아닌 조연 배우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다. 만약 한세계가 맥락으로서의 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영화감독 이희섭(김승욱 분)에게 다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서도재(이민기 분)의 맥락으로서의 자아는 선호그룹 티로드항공 본부장으로 로열패밀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사고로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대인관계가 매우 어렵다. 서도재는 앞에 선 여성이 내 어머니인지,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인지 알기위해 자주 입는 옷차림, 손버릇, 걸음걸이, 가까이서 맡아지는 체향 하나하나 모두 다 기억했고, 어디를 가도 항상 비서를 대동했다. 만약 그가 맥락으로서의 자아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았으면, 안면인식장애가 생긴 이후 다시 재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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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스틸사진. 사진=JTBC 방송 캡처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에서의 주인공과 현실에서의 나뿐만 아니라 회사와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왕년에 잘나갔던 경험과 기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할 경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금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왕년에 잘나갔던 나, 개념화된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나, 맥락으로서의 나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시작한다면, 과거의 나답게 살지 않고 현재의 나답게 살면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성취하면서 더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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