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비상임위원제 개편 계획을 철회했다.
공정위 심의(전원회의·소회의)에서 판사 역할을 하는 9명 중 4명이 변호사 등 본업을 겸직하는 현행 비상임위원 체계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부실·편파 심의'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사무처와 위원회 분리를 추진하지 않기로 한 데 이어 비상임위원제까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심의 신뢰도 제고'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비상임위원제 개편과 관련 “다른 정부부처, 이해관계자와 공감대가 탄탄하지 않다”며 “기존 제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8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비상임위원의 전원 상임위원화 계획을 담았다. 외부인으로 구성된 4명 비상임위원을 모두 상임위원으로 변경하되, 외부기관 추천을 받아 선임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공정위는 최근 이런 내용을 제외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상정했다.
김 위원장은 “비상임위원제도 장점이 있다”며 “국회의 정책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말했다.
비상임위원제 개편은 공정위 심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중요 과제로 꼽힌다.
공정위 심의에서 판사 역할을 하는 총 9명 공정위원 중 5명은 공정위 직원, 4명은 외부 출신 비상임위원이다. 비상임위원은 변호사·교수 등 본업을 겸하면서 매주 한두 차례 심의에 참가한다. 특성상 심의에 집중하기 어렵고, 특정 기업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 한 비상임위원은 취임 후 9개월간 소회의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아 논란이 되자 중도 사퇴했다. 사퇴 직후 공정위 사건과 관련 있는 대기업 변호를 맡아 재차 문제가 불거졌다.
공정위가 “심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임위원제와 함께 사무처와 위원회가 '한 지붕'에 있는 체계는 공정위 심의 신뢰도를 낮추는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사무처와 심의를 맡는 위원회가 함께 공정위에 있는 것은 검찰과 법원이 하나의 조직에 속해있는 격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태스크포스(TF)는 사무처-위원회 분리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면서도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공정위에 제출한 권고안에 해당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공정위 역시 개정안에 내용을 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이라는 말이 무색하다”며 “끊임없이 개선 요구 목소리가 나오는 '공정한 심의'를 위한 방안은 담기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최근 시행된 개정 하도급법을 설명하면서 서면 계약서 발부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공정위가 운용하는 3개 평가제도(동반성장협약, 공정거래자율준수프로그램, 소비자중심경영)는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거래 때 계약서, 기술자료요구서 등을 서면으로 꼭 발부해달라”며 “사건 처리 때 서면이 발급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면 엄정히 법을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