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우리나라 지식재산권(IP) 경쟁력이 미국과 일본 대비 한참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적 IP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특허도 확보하지 못했다. 국가마다 IoT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특허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소극적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 기술 개발 관점에서 벗어나 핵심 특허 매입을 통한 기술 경쟁력 강화 전략도 함께 고려해야할 시점이다.
전자신문과 IP데이터 기술기업 광개토연구소가 지난 10년간 IoT 관련 미국 특허청 공개(심사 중)·등록 특허 수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총 5528개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지만 격차는 상당하다. 미국은 총 특허 보유수가 4만7219개, 일본은 1만6413개다. 미국 대비 11.7%, 일본 대비 33%에 불과하다. 세계 3위라는 위상이 무색하다.
미국 기업 별 특허 보유수는 상당히 고른 편이다. 가장 많은 IoT 특허를 보유한 기업은 퀄컴으로 992개다. 구글이 900개, IBM 819개, 하니웰과 포드가 799개로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특정 기업에 편중됐다. 우리 기업 중 가장 많은 IoT 특허를 보유한 곳은 삼성전자로 총 2053개다. 우리나라 전체 가운데 절반에 가깝다. 두번째로 많은 IoT 특허를 보유한 LG전자는 639개다.
양질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특허 피인용수를 따지면 경쟁력은 한단계 하락한다. 특허 피인용 수는 특허청 심사관이 특허 심사 과정에서 특정 특허를 인용한 횟수로, 피인용수가 높을 수록 양질의 특허로 간주한다.
지난 5년 간 우리나라 특허 당 심사관 피인용수는 평균 5.26으로 미국 8.67과 일본 7.97에 크게 뒤처진다. 총 특허 보유 수 4위였던 독일이 피인용 수에서는 5.40을 기록, 우리나라를 앞질렀다.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특허 수는 적지만 보다 가치있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성태 한국사물인터넷협회 본부장은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IP 확보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IoT 기업은 상당 수가 중소기업으로 국내 시장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IoT 분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IoT는 스마트시티·스마트공장·스마트빌딩·스마트홈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이다. 그만큼 국가·기업별로 연구개발(R&D) 등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적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특허 매입을 통해 IP 포트폴리오를 확충하는 게 세계적 트렌드다. 특허 매입은 IoT 분야 R&D 기간을 단축하면서 신속한 시장 대응이 가능,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특허 매입 활동에 소극적이다. 총 특허 보유수는 세계 3위권이지만, 특허 매입 활동에서는 후발주자다.
미국은 지난 10년 간 1만1946개 특허를 사들였다. 미국 IoT 전체 특허 25% 수준이다. 일본이 총 2000개 특허를 매입해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독일(760개), 싱가포르(572개), 케이맨 제도(541개)에 못 미치는 450개 특허를 매입했다. 총 특허 보유수보다 3계단이나 내려왔다.
특허 매입에서도 쏠림 현상이 심하다. 우리 기업 중 IoT 특허 매입 상위 3개사는 삼성전자(123개), 에스프린팅솔루션(62개), 삼성디스플레이(39개)다. 모두 삼성 계열사다. 에스프린팅솔루션은 지난해 말 HP에 매각됐다. 에스프린팅솔루션이 가진 6500개 국내외 특허를 HP가 양도 받았다. 이 중 기업업무용(오피스) IoT 특허도 상당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4번째로 많은 IoT 특허를 매입한 곳은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ID)다.
우리나라가 특허 매입에 부진한 건 특허 매매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다. 기술은 자체 개발해 보유해야하는 자산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강민수 광개토연구소 대표는 “글로벌 IoT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자신에게 부족한 IP 포트폴리오를 매입하는 방식도 고려해야한다”면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특허 매입에 적극적인 것도 효율적 기술 확보와 IP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IoT는 향후 특허 침해 소송 등 분쟁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도 지목받고 있다. 우리나라 보다 특허 매입에 앞장 서 있는 케이맨 제도 때문이다.
케이맨 제도는 대표적 조세회피처로, 특허 양도에 대한 세금을 거의 없다. 또 소송으로 얻은 수익금에 대한 절세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특허 괴물'로 불리는 일부 특허관리전문회사(NPE)가 활동하는 주 무대다. 케이맨 제도에서 특허를 다수 매입하는 현상은 향후 글로벌 특허 분쟁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NPE가 한두개 경쟁력있는 특허를 매입,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을 상대로 특허 침해 등 소송전을 전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 대표는 “케이맨 제도에서 특허 매입량이 많다는 건 향후 글로벌 특허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