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을 겨냥한 세금 회피 차단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공평 과세 움직임과 같은 연장선에서 이뤄진다.
디지털세 법안이 국회 입법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에만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세 차례 열렸다. 시민사회 단체, 학계도 가세했다. 우리기업과 역차별을 풀자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압박 수위를 계속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반대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새 제도가 국내기업에 미칠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대내외적 변수를 모두 감안한 실질적 대안이 나올지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위망 좁히는 정부·국회
정부는 국제사회 행보에 발맞춰 국내법을 손질한다. OECD, EU 차원에서도 결론 도출이 더딘 법인세보다는 부가가치세를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2015년과 올해 두 차례 관련법을 개정했다.
OECD는 다국적 기업의 세원잠식 및 소득이전을 막기 위해 BEP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06년부터 부가가치세 가이드라인 설계 작업을 펼쳤다. 2016년 완성했다. 정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올해 7월 클라우드 컴퓨팅을 과세 대상에 포함시켰다.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비롯한 외국계 클라우드 기업에 대한 과세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2015년에도 OECD 권고안을 토대로 간편사업자등록(SBOR) 제도를 도입했다. 국외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납부를 유도하는 장치다. 정부는 등록 사업자에게 전자 신고·납부를 허용했다. 세금계산서 발행 의무도 면제해줬다. 납세협력 비용을 줄여 징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OECD가 만든 부가가치세 글로벌 포럼에도 동참하고 있다. 회의는 2012년부터 4차례 개최됐다. 국제적 과세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정책에 발 빠르게 반영할 방침이다.
법인세는 정중동 행보를 이어간다. 고정사업장 문제와도 직결되다 보니 장기 과제로 삼고 해결책을 찾는다. 소비 형태가 외부로 드러나는 부가가치세와 달리 법인세는 회사별 매출과 비용 데이터를 전부 알아야 징수 가능하다.
국회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김성식·박선숙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은 디지털세 법안을 내놓는다. 현재 국회 법제실에서 법률 검토를 받고 있다. 디지털세 주제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다. 디지털세 논의는 EU에서 촉발됐다. 법인세는 일단 제쳐두고 매출에 일정 비율을 곱해 세금을 물리는 새 과세 체계다.
박영선·김성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부가가치세를 통한 역차별 해소를 추진한다. 국정감사 이슈로 연결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국내에서 수조원을 벌어가면서 세금은 거의 안 내는 행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시민사회 단체도 가세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선봉에 섰다. 부가가치세 납부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을 찾고 있다. 한국형 디지털세로 발전시킬 목표다.
◇공정 과세 발목 잡는 지뢰밭
세금 부과와 관련한 국제 조세 논의는 100년 전 시작됐다. 그동안 조세조약에 따른 과세권 배분 원칙이 변하지 않고 유지돼왔다. 결과적으로 조세조약을 건드리지 않는 한 우리가 국내법을 아무리 개정해도 세금 징수는 쉽지 않다.
조세조약은 체결 국가별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고정사업장이 위치한 국가에 과세권을 준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고정사업장은 물리적 실체를 전제로 한다. 현재 디지털 방식 거래에 대해 세금을 물릴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디지털경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정사업장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OECD, EU가 한목소리를 낸다. 고정사업장을 대체할 새로운 과세 근거를 찾고 있다. 그러나 중지가 모이지 않는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근거를 마련해도 소득을 국가별로 얼마씩 배분하느냐도 관건이다. 징수 형평에 대한 문제여서 국가 간 힘 싸움이 불가피하다.
OECD가 2020년까지 답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시간표는 계속 늦춰질 수 있다. 대안으로 디지털세, 부가가치세 징수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OECD 답을 기다리면서 별도로 추진되고 있다. 이마저도 쉬운 과제는 아니다. 글로벌 IT 기업 매출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5년 법이 개정되면서 유료 애플리케이션(앱) 판매에 따른 부가가치세를 걷을 수 있게 됐지만, 앱 구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익에 대해선 세금 징수가 불가능하다. 업체가 스스로 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한 소득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온라인광고 기반 외국계 회사도 매출이 베일에 싸여있다. 대부분 본사를 조세회피 지역에 두기 때문에 국가 간 과세 정보 공조를 끌어낼 수도 없다.
국익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IT 강국이면서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다. 설익은 제도 변화로 우리기업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역차별 논란도 우리기업만 법을 지키면서 손해를 본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새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역차별만 가중될 수 있다. 국제사회 규칙인 차별금지 조항에 저촉돼 무역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정교한 전략·전술 요구
정교한 전략·전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글로벌 IT 기업 대상 세금 회피 차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과세당국의 적극적 징수 의지가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조세 회피에 대한 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질 과세원칙을 규정한 국세기본법 14조를 개정해 혐의가 발각되면 사업자에게 결백 입증 책임을 부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조세범 처벌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 세금 회피를 도운 조력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조력자에는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 교수 등이 포함됐다.
SBOR 제도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대안으로 떠올랐다. SBOR은 국외사업자가 국내에 전자적 용역을 공급할 때 작동한다. 국내에서 공급한 것으로 간주,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도록 한다. EU 역시 SBOR과 비슷한 모스(MOSS) 제도를 운영 중이다. 도입 첫해인 2015년에만 3조9000억원 상당 부가가치세를 추가로 걷었다.
우리 과세당국은 SBOR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업계는 5000억원 넘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개별 납세자 과세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결과를 알리고 해당 제도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
전자적 용역 범위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금은 게임, 음성, 동영상 파일, 소프트웨어와 같은 저작물 등으로 명시돼 있다. 인터넷 광고는 빠졌다. OECD, EU, 일본에 비해 범위가 좁고 항목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다른 제도와의 시너지도 내야 한다. 올해 초 국세청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으로부터 BEPS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보고서를 세금 징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되지만 대략적 수익 구조 파악은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 말부터 일정 규모 이상 유한회사는 외부감사·공시 의무를 진다.
김빛마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디지털경제는 승자독식, 독점화 경쟁 구조가 나타나기 쉽다”며 “과세가 제대로 안 이뤄지면 장기적으로 기업 간 경쟁구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표]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대표 유형
자료=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표]EU 디지털세 부과 계획
자료=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표]EU 기업군별 평균 실효세율
자료=글로벌 영리기업 대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제공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