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삼성전자는 3년 동안 180조원에 이르는 투자계획안을 내놨다. 재계에서 여러 투자안을 내놨지만 삼성전자가 제시한 투자 규모는 압도하는 수준이다. 정부 요청에 화답하는 그림이었다. 투자계획안 발표가 임박했을 당시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더 새롭게 투자할 방안이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안이 429조원, 삼성전자 지난해 매출액이 약 24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은 규모다.
정치권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에 '투자 민원'을 넣는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분명 재계는 사회 역할이 필요하다. 기업이 사회 책임을 다하고, 벌어들인 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이 같은 민원이 자칫 '기업 손목 비틀기 식' 투자 창출로 변질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기업 입장에서 투자란 미래 전략이나 마찬가지다.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마련한 청사진이 외풍에 휩쓸려선 안 된다. 미래 전략은 기업 먹거리이자 생명선이다. 외부 성화에 못 이겨 기업이 합리적 투자를 하지 못한다면 큰일이다. 미래 전략이 흔들리면 기업은 휘청거린다.
기업은 필요할 시점에 필요한 만큼 투자한다. 만고의 진리다. 미래 전략은 기업이 전력을 다해 구성한 고차방정식이다. 단순 첨단기술 연구개발(R&D)뿐만 아니라 연구소와 생산시설, 인력 운용, 시기 등 복합 요소가 상호 작용한다. 하나가 흐트러지면 계획 전체가 틀어질 수 있다. 한 번 실행한 투자는 돌이킬 수 없다. 기업 투자는 정치 논리가 아닌 철저한 산업 논리를 바탕으로 실행해야 한다. 기업이 받을 압박도 고민해야 한다.
지자체가 먼저 기업에 파격 조건을 제시해서 기업 생산기지를 유치하는 것과 힘 있는 권력자가 체면 세우기용으로 기업에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투자 민원을 기업이 무시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재 우리 산업계는 '제2 반도체'를 물색, 육성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에 있다. 손목 비틀기 식 투자 유치나 권유라면 잠시 접어 둬야 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