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디지털 기업의 세금회피를 막기 위한 디지털세 부과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성식·박선숙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이 10일 공동 개최한 디지털세(稅) 주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같이 진단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홍민옥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회계사는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두지 않고 원격으로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현행법 체제로 과세하긴 어렵다”며 “이에 따라 국내기업과 역차별, 과세권 침해 문제가 발생했다”고 우려했다.
고정사업장을 기준으로 세금을 물리는 지금 구조로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홍 회계사는 대안으로 간편 사업자 등록제도 도입을 제시했다. 부가가치세 신고·납부를 돕는 장치다.
그는 “고정사업장 중심으로 설계된 조세조약 때문에 법인세를 손질하는 것은 어렵지만, 부가가치세는 소비지국 세율에 따르게 할 수 있다”며 “유럽연합(EU), 호주가 운영하는 간편 사업자 등록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부가가치세라도 제대로 걷게 되면 과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며 “이 정보를 바탕으로 EU와 같은 국제기구와 디지털세 관련 논의를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오준석 숙명여대 교수는 고정사업장에 대한 정의부터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하는 '가상의 고정사업장'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OECD는 고정사업장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물리적 공간 외 매출, 서비스, 유저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정사업장 여부를 판별할 계획이다. 오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미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다만 디지털세가 기업 활동을 제약해선 안 된다”고 전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디지털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도출됐다. 신중론도 눈길이 끌었다. 국익 차원에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반론이다.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세무사는 “EU가 디지털세를 주장하는 까닭은 IT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잃을 게 적기 때문”이라며 “반면 미국과 우리나라는 손해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 역시 자국 이익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상황”이라며 “우리만 EU와 보조를 맞추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디지털세 부과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EU 내부에서조차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디지털세가 국내·외국기업 간 역차별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던 기업이 또 다시 과세를 회피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역차별 문제만 가중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는 디지털세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부작용도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좌장을 맡은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정리 발언을 통해 이날 토론회를 총평했다. 김 원장은 “아직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긴 하지만 국익 입장에서만 볼 문제는 아니다”며 “국가 간 세수 배분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