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인간의 행복을 위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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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유엔(UN)은 지난 3월에 매년 조사하는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다. 종합순위 1위부터 3위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로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이들 나라는 소득 수준이 높고 행복 측정요소 6개 모두 골고루 상위에 랭크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한국은 156개 대상국 중에 57위로 순위가 그리 낮은 편은 아니었다. 행복지수 측정 요소 6개 가운데 기대수명은 5위, 소득수준은 29위로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라이프 선택 자유는 140위로 매우 낮았다. 먹고 살만하지만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미다.

혹자는 모든 사회 활동을 경쟁 구도로 여기고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 내에 처리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어 보이는 주장이다. 이런 경쟁 중심 사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은 그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우리가 개발한 정보통신 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든 반면에 24시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경제 논리 탓에 인간다운 삶의 여지를 없애고 더 심각한 경쟁사회를 부추기지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필자에게는 이를 곱씹는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 짧은 휴가를 떠나게 되었는데 깜박하고 휴대폰을 집에 놓고 출발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이참에 업무와 관련한 모든 연락을 끊고 휴가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후 가장 휴가다운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럼 인간 대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이 있다면 더 행복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을 편하게 만드는 것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진다면 삶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 자명하다.

인공지능(AI)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알파고 사례로 AI 연구개발(R&D)이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바둑이라는 두뇌 스포츠는 인간이 도전해야 할 매력적인 대상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기술 개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개발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발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후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가 나타나지 않도록 사전에 기술개발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모든 기술 개발은 경제 논리 기반으로 추진돼 왔고 지금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동안 개발된 수많은 기술로 야기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지구 전체에 유례없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해 이상기후도 지구 온난화의 여파다. 이는 인간의 근시안적 기술 개발과 자연 훼손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의견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으로도 기술 개발을 하는 인간이 개발 목표와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가 주도해야 할 타당한 기술 예로는 정보통신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 블록체인과 같은 신서비스를 안전하게 제공하는 새로운 인프라 기술, 지속가능한 환경 보전이나 난치병 진단 및 치료 등 주요 사회문제를 근본 해결하는 기술이다. 정부가 이들에 대한 투자를 가시화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출범한 정부는 과학기술 정책 방향도 '사람 중심'으로 설정해 국민 행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큰 기대를 가지게 한다. 다만 이러한 목표가 실제 국민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인간 행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술로 집중돼야 한다. 특히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기업이 할 수 없고 정부만이 투자할 수 있는 중장기 기술 개발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병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네트워크연구본부 책임연구원 bslee@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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