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신산업 불확실성 극복해 규제 혁신 앞당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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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불편한 노년 여성이 집에 있는 인공지능(AI) 스피커에 대고 음성으로 파스를 주문하자 로봇이 근처 약국에 가서 물건을 받아 집까지 배달해 준다. 유튜브에서 '배달로봇'을 검색하면 나오는 동영상의 한 장면으로, 몇 년 안에 일상화될 모습이다. 실제 미국, 독일, 중국 등에서는 무인 배달로봇 시범 사업이 한창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오하이오주 등에서는 일찌감치 배달로봇 관련 법제화도 완료했다.

우리나라 도로에는 배달로봇이 다닐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현행법에는 보도나 차도에서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배달로봇이 주행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주행 속도, 제품 사양, 사고 발생 시 처리 방식 등 논의해야 할 내용이 많지만 아직은 초보 수준이다.

당장 현행법을 정비하기도 녹록하지 않다. 신산업에 있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신산업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진보 기술과 사업 방식으로 등장한다. 혁신 기술이 기존 제도에 투영될 때 '회색지대'에서는 예측조차 어려운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이때 규제 개혁에 대한 저항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고해상도 3D 지도, 초음파·라이더 센서 등 첨단 기술을 탑재해 안전운행에 자신 있는 배달로봇이라 해도 다양한 환경 아래서 돌발사고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규제당국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정부의 규제 혁신 성과가 막상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처럼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한 채 규제 개혁을 가로막거나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산업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혁신성이 높은 신산업일수록 불확실성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당장 무리하게 제도를 개선하기보다는 실증을 통해 불확실성을 검증해 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법안 개정을 추진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규제 샌드박스 5법'의 조속한 입법이 절실한 이유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규제 샌드박스 입법 이후 성과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혁신 기업들과 함께 샌드박스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둘째 신산업 규제가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될 수 있도록 공론화돼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과거 경험만을 근거로 신산업 규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신산업의 불확실성은 다수의 집단지성을 거쳐야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KIAT는 현장 접점, 전문가 네트워크, 대정부 협력 채널을 연계한 가운데 민·관 논의의 촉발과 조정을 지원하고 있다.

셋째 민간 사업자들도 신산업 불확실성을 밝히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 기획이나 연구개발(R&D) 단계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살피고, 실증을 거쳐 개선해야 한다. KIAT는 신산업 분야 혁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검증 여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 대상으로 내년부터 실증 R&D 지원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민간이 자체 파악하기 어려운 신산업 분야 법·제도·정책 현황 조사 분석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신산업 불확실성을 지속해서 추적·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사전 허용-사후 규제를 확대하되 국민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고 제도 운영 현황이나 문제점을 점검해야 한다.

규제를 개혁한다고 해서 혁신 성장이 바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규제 개혁 없이는 혁신 성장도 없다. 신산업 성공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지금처럼 규제 개혁이 계속 정체된다면 혁신성장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민·관 상호 협력 아래 신산업의 불확실성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규제의 늪에 빠진 기업이 혁신 성장 다리를 쉽게 건널 수 있도록 KIAT도 징검다리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hakdokim@ki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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