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교육당국은 교육 인프라와 시스템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디지털교과서를 전국 모든 학교에서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무선인터넷 인프라 보급도 시작됐다. 온라인공개강좌(MOOC)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사업 참여자 범위를 넓히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커리큘럼 개발에도 나섰다. 지능형 학습 플랫폼도 개발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상황에 비춰봤을 때 너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교육 환경만 놓고 보면 획기적 시도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한참 뒤쳐졌다. 선진국은 에듀테크를 활용해 지식전달식 교육에서 벗어나 융합형 인재 양성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다. 교육 혁신이 활발한 만큼 산업계도 더불어 성장한다.
국내에서는 대입제도 개선에 지나치게 공을 들인 나머지 근본적인 교육 혁신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교육 혁신을 추진하는 데 자연스럽게 따라올 디지털 전환이 더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교육 혁신 로드맵에 '미래교육 시스템'이 없다. 먼 미래를 위한 시범사업 수준으로 여겨진다. 미래 교육을 위한 투자와 공교육 혁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미래세대를 위한 시스템 전환, 걸음마 시작
올해 '2015 교육과정'에 맞는 디지털교과서가 처음 출간됐다. 디지털교과서는 그동안 연구학교 중심으로 사용됐으나 앞으로 학교와 교사 선택에 따라 누구든지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교과서는 단순히 서책 교과서를 디지털화하는 차원을 넘어 동영상·360도카메라·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해 어려운 항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과학 교과서는 실험과정을 동영상으로 보고, 퀴즈도 풀 수 있다. 사회과목은 한국 지리 항목에서는 360도 카메라를 이용해 현장에 가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준다.
초·중·고 무선인터넷 구축 사업도 시작됐다.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위해 2021년까지 전국 7967개 모든 초·중학교에 무선인터넷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선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지만, 우선적으로 무선인프라 확충에 예산이 투입되도록 할 것”이라면서 “계획보다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SW교육 필수화도 올해가 시작이다. 중학교는 2018년 1학년을 시작으로 2020년에 전체 학년, 초등학교는 2019년에 모든 초등학교(5학년 또는 6학년)에 적용된다. 초등학교는 내년부터 5·6학년 실과 과목에서 17시간 이상, 중학교는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정보 과목에서 34시간 이상 SW교육을 필수 실시한다.
◇사교육보다 늦은 디지털 전환
이 같은 노력에도 공교육 분야 미래 혁신이 더디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는 '혁신 속도' 때문이다. 세계는 물론 국내 사교육도 시대 변화에 따라 앞서 나갔다. 종이 기반 학습지 시장은 이미 태블릿PC 기반 디지털학습지로 전환하고 있다. 디지털과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요즘 초등학생은 서책보다 디지털방식을 선호한다. 국내 디지털 학습지 시장은 최근 3년 동안 매년 3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태블릿PC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에서도 디지털학습지 확산에 따라 태블릿PC 시장이 성장할 정도다.
국내 디지털교과서 보급은 시작됐으나, 교실에서 사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무선인터넷을 보급해도 한 학교당 1~2교실에 불과하다. 학교에서는 시범삼아 해 보는 정도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디지털교과서 과목도 제한적이다. 오히려 사교육이 더 빠르다. 과학·영어·사회는 물론 수학 등 모든 기초 과목에서 디지털 툴을 활용한다.
윤문현 천재교과서 본부장은 “앞으로 10년이면 모든 교과서가 디지털교과서로 전환될 것”이라면서 “학습지 시장도 이를 고려해 빠르게 디지털 전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다. 혁신 대학으로 주목받는 미네르바대학, 애리조나주립대학 등은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다. 미국 초·중등 학교는 클라우드를 활용하고, 수학 등 기초 과목에서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도입해 흥미를 더하고 있다. 국내 디지털 수학 교육 솔루션 업체인 노리는 한국이 아닌 미국 공립학교에 솔루션을 공급한다.
영국은 SW 코딩을 초·중·고에서 정규과목으로 편성하고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한 A레벨에도 코딩 과목이 들어가 있다. 맛보기 정도로 코딩을 가르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공교육에서 적극적으로 에듀테크를 활용하면서 에듀테크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메타아리에 따르면 미국 에듀테크 분야 벤처투자 금액은 2014년 24억달러에서 2016년 95억달러 규모로 증가했다. 지난 해에는 100억달러를 넘겼을 것으로 보인다.
임재환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장은 “100억달러 규모 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투자되는 분야 톱3 정도에 충분히 들 것”이라면서 “선진국 공교육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전체 에듀테크 시장을 통틀어도 3조원 정도다. 국내 벤처캐피털 투자는 바이오·제조·소재 등에 집중됐다.
◇공교육이 적극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공교육 혁신을 위해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능형 학습평가 플랫폼을 도입하면 교사가 개별 학생 성과나 이해정도를 보다 빠르게 평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도움으로 여유가 생긴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몇몇 학생에게만 학생부를 써준다는 불만도 해소할 수 있다.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에서도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자유학기제나 자유학년제도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농·산·어촌 학생도 폭넓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온라인공개강좌(MOOC)와 직업교육 지원 사업은 별도로 운영되는 문제가 있다.
임 회장은 “공교육에서 클라우드를 비롯해 에듀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서 “교육 제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