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북 정상회담은 잔상이 많이 남는다.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마다 한·미, 북미 정상회담과 향후 이어질 종전 선언, 하반기에 있을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까지 여러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평양냉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용한 펜까지 화제다.
다수 국민이 한반도에 불어온 훈풍에 고무돼 있다. 그동안 수차례 화해 분위기가 갑자기 대립 관계로 바뀌기도 했고, 맹목적 신뢰만 보내다 뒤통수를 맞은 적도 있다. 이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현 시점이 지난 1950년 6월 25일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좋은 때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경제·산업계 관심은 남북 경제 협력으로 옮아간다. 기대치가 높다.
우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가능하다. 휴전 상황에 놓인 국가여서 주식시장 자체가 저평가받고, 국가 신용등급을 낮게 보던 시각을 바꿀 수 있는 호기다.
개성공단 복원을 넘어 평양공단, 신의주공단 등 새로운 남북 경제 협력 거점도 나타날 수 있다. 전력, 철도, 통신 인프라 확장 가능성도 언급된다.
다소 저렴한 북한 인건비도 매력이다. 매장량은 정확히 모르지만 희토류나 광물자원의 광범위한 활용 가능성도 회자된다.
단일 경제권으로 묶이면 내수 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 해외 의존도를 낮추면서 내수만으로 한 산업을 성장시킬 만한 볼륨을 갖춘다면 산업 전반에 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김칫국부터 마실 것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이제 겨우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가을철 추수할 곡물량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과도한 낙관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협을 단초로 어떤 사업을 해볼 수 있고, 어느 산업이 유망한가를 따져보는 것은 기업체에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조만간 주요 대기업마다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될 가능성이 있다. 별 생각이 없던 기업이라면 지금이라도 천천히 시선을 돌려봄 직하다.
남북 경협은 일단 첫단추만 잘 꿰어지면 산업계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격변기에는 필연적으로 업계 순위 재편이 이뤄진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업종 내 우열이 바뀌고, 갑작스런 승자가 나타날 수 있다. 많은 유보자금을 곳간에 쌓아 두고 새로운 성장 동력에 목마른 우리 대기업에 남북 경협은 아주 매력 넘치는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정부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운영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 정부는 기업에 정확한 가이드라인 제시와 함께 기업의 안전판 확보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과도한 거품을 제어하는 일도 정부 몫이다. 벌써 증권 시장에서 남북경협 테마주가 꿈틀거리고 있다. 자칫 무리한 투자 권유나 투기 성향에 기댄 중개업자가 난립할 여지가 있다. 이를 제대로 틀어막지 않으면 불특정 다수 피해자가 나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제도 마련과 규제 정비 과정에서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희망 자체도 좋지만 그 과실까지 잘 얻는 것은 더 중요하다. 남북 경협은 아직 출발도 안 했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가 차분하고 꼼꼼하게 많은 것을 챙기고 함께 가꿔 가야 할 것이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