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 신제품 출시 행사장에서의 일이다. 실무진이 정성을 들인 티가 물씬 묻어나는 화려한 쇼케이스였다. 주목 받는 신제품이다 보니 현장엔 기자도 꽤 많았다.
게다가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본사 임원까지 참석했으니 기대감은 두 배로 커졌다. '평소 들을 수 없던 다른 말을 들을 수 있겠구나'란 기대감이 들었다.
실망스러웠다. 제품 소개 후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현장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에서의 판매 실적, 소비자 부정 이슈 관련 질문까지 다양했다. 국내에서 수차례 제기된 질문인 만큼 해당 기업으로서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고위 임원 답변은 매우 제한돼 있었다. 멋진 행사장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매뉴얼을 읽는 수준이었다. 다른 질문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차라리 “내규상 답할 수 없다”고 단도직입으로 말하는 게 나아 보일 정도였다.
자동응답기 같은 답변에 화가 난 기자도 본인을 포함해 여럿이었다. 제품 홍보 외 하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 않겠다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에 그칠 거였다면 자료만 배포하지 굳이 이 많은 기자를 현장까지 불러낼 이유가 있었나 싶었다.
글로벌 기업은 취재하기 어려운 곳 가운데 하나다. '본사 규정'이라는 높은 벽 때문이다.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지만 다수 기업에서 단순 데이터조차 받기 어렵다. 물론 숨기고 싶거나 공개하기 불편한 내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상 공개하는 정보조차 일언반구하지 않는 건 심했다.
국내에 진출한 적잖은 글로벌 기업이 국내 인프라 투자, 고용 확대, 사회 공헌 활동에 힘쓰고 있다. 그런 소식을 알리는 건 산업지 기자로서 기쁜 일이다.
그러나 국내 시장 점유율에 비해 다이슨의 사회 공헌, 국내 투자 소식은 거의 들은 게 없다. 한국 시장을 향한 사고방식도 언론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