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외국계 기업이 잠식한 '韓 중고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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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중고폰 거래량은 1000만대를 돌파했다. 연간 국내 휴대폰 판매량이 170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중고폰 시장 성장세가 매섭다. 중고폰 거래량은 △저렴한 알뜰폰 유심요금제 등장 △프리미엄폰 가격 상승 △보상 프로그램 활성화 등으로 인해 지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 같은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고폰 시장은 정상적인 유통 체계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 대부분을 외국계 기업이 잠식하고 있어 가격 불균형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를 낳고 있다.

◇개인·대리점 거래로 양분

국내 중고폰 시장은 개인거래와 대리점 거래가 각각 50%를 차지한다. 이용자가 중고나라, 세티즌 등 온라인 장터에 매물을 올려 직접 판매하거나 '중고폰 매입'이라고 써 붙인 소매점에 물건을 판다.

개인거래는 아무런 제약 없이 판매가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 시세 보장 불분명, AS 기록 유무 확인 불가 등 우려도 존재한다.

대리점이나 판매점 거래는 주로 새 휴대폰을 구입할 때 이뤄진다. 기존에는 매장에서 반납한 중고폰 가격을 단말기 가격에서 빼주거나, 판매 대행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중고폰 개인딜러가 매장을 돌며 반납 중고폰을 매입, 해외수출업체 매각 또는 온라인에서 재판매했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 보상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중고폰 유통 시장 변화를 이끌었다. 공개입찰, 해외수출, 개인 거래, 알뜰폰 등 경로를 거친 후 소비자에게 재판매되는 유통채널이 형성됐다.

◇외국계 기업이 대부분 잠식

중고폰 보상 프로그램 시발점은 삼성전자가 2016년 3월 '갤럭시S7' 출시에 맞춰 선보인 '갤럭시클럽'이다. 이용자가 12개월 또는 18개월 이후 사용하던 기기를 반납하면 새 제품 구매비 부담을 낮춰주는 방식이다. 중고폰 반납은 프로그램 출시 1년 후인 지난해 3월부터 본격화됐다.

기존에는 이통사가 회수한 중고폰을 공개입찰 방식으로 국내 중소업체에 매각했다. 하지만 현재는 외국계 기업이 제조사·이통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보상프로그램 운영 및 공개입찰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클럽·갤럭시S9 특별보상프로그램 중고폰 제휴사는 어슈어런트 올리바다. SK텔레콤 T갤럽시클럽 중고폰은 메리츠화재가 회수하지만 어슈어런트 올리바로 물량이 다시 넘어가는 구조다. LG유플러스 보상프로그램 제휴사도 어슈어런트 올리바다. 애플코리아, KT는 브라이트스타코리아와 각각 중고폰 회수 사업을 제휴했다. KT링커스와 행복한에코폰은 각각 KT, SK텔레콤 중고 휴대폰 검수 역할을 한다.

미국 보험사인 어슈어런트는 지난해 2월 올리바를 인수, '어슈어런트 올리바'라는 브랜드로 국내 중고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홈페이지에는 “한국 내 모바일·소매 부문에서 교환·프로그램 업그레이드 등을 포함하는 휴대폰 보험 상품과 서비스 제공 역량을 확보, 모바일기기 보호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서게 됐다”고 소개했다.

브라이트스타코리아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브라이트스타가 설립한 한국지사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은 2013년 미국 브라이트스타를 약 1조5000억원에 인수했으며 브라이트스타코리아는 같은해 우리나라 중고폰 시장에 진출했다.

◇韓 중고폰 업체 '현대판 허생전' 우려

국내 중고폰 업체는 외국계 기업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물량 묶임현상 △가격 불안정 현상을 손꼽았다. 전국 500여개로 추산되는 중고폰 업체가 균형있는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고 한 목소리다.

중고폰 업체는 '현대판 허생전'이 재연될 것을 우려했다. 물건을 선점하고 시장 가격 불균형 현상을 일으켜 나라를 휘청이게 만든 허생처럼 국내 중고폰 시장에도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중고폰 업체 관계자는 “중고폰을 찾는 소비자는 점점 늘고 있는데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해 최근 사업이 어려워졌다”면서 “기존에는 통신사가 중고폰을 공개입찰 형태로 직접 매각했는데 현재는 외국 기업이 본사 승인을 받아 매각하다 보니 양질의 중고폰은 대부분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잔여 물량만 국내에 유통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중고폰 업체 대표는 “외국계 기업이 매물로 나와야 할 중고폰 물량 다수를 풀지 않으면서 신제품이 출시된 이후에도 중고폰 가격 하락이 예년보다 줄고 불안정한 시세가 유지됐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갤럭시S8 중고 시세가 30만원을 웃돌 때, 미국·일본 등 시세는 20만원 초반이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폰 공급량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신제품 출시 이후 시세 급락' 특성이 희미해지고 결국은 중고폰 구매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중고폰 빅데이터 제공사 유피엠에 따르면 지난해 갤럭시S8 출시 첫 날에는 갤럭시S7 중고폰 시세가 21만2081원이었다가 사흘 후 17만9078원으로 16.2% 내려갔다. 반면 갤럭시S9 출시 첫 날 갤럭시S8 중고폰 시세는 34만5043원으로 전년보다 10만원 이상 비싸게 책정됐다. 출시 사흘 후 시세는 4.3% 내려가는데 그쳤다.

◇해결책 있나

전문가는 중고폰 시장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상프로그램'으로 유입되는 중고폰 중 일부를 국내 중소업체가 직접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정경쟁이 전제조건이다. 제조사·이통사와 외국 기업이 적합한 절차에 따라 계약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순 없지만 투명한 시장 형성과 소비자 중고폰 구매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중고폰 시세 불균형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고폰 시세 비교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국내 업체별 중고폰 시세를 한 눈에 비교, 소비자가 현명한 가격에 구매 또는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중고폰 시세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중고폰 시세 비교 프로그램을 상반기 정식 개시할 예정”이라며 “이용자가 온라인에서 최대한 많은 종류의 중고폰 가격을 비교하고 현명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유도, 투명한 시장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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