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사라졌네요.”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예정한 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 11차(ICD-11)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ICD-11은 게임 장애를 포함했다. WHO는 개정안 상정을 1년 유예했다.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게임 관련 단체가 반대 성명을 내는 등 항의가 이어졌다. 정부와 의료계도 의견이 갈렸다. 과도한 보험 청구로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제대로 된 연구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WHO가 일정을 미루자 게임업계에서는 “시간을 벌었다”고 했다. KCD를 주관하는 통계청이 ICD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이른 시일 내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갑자기 싸워야 할 상대가 사라진 업계는 안도했다. 그러나 불안하다. 게임 질병화 논의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게임은 지금보다 큰 사회 책임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정책 결정권자는 점점 게임에 관심을 둘 것이다.
산업을 향한 법 제재에 거부감이 적은 한국은 '게임 질병화' 논의에서 앞서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심야 게임 접속을 강제로 막았다. 게임업계에 게임 과몰입 치료비용을 청구하는 입법을 시도했다.
게임업계가 나서야 한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이제 필요가 없다. 게임이 얼마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지 강조해야 한다. 게임 부작용에 대해 '아니다'고 정색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과몰입을 일으키는 배경과 작동 방식 규명에 노력해야 한다.
게임 산업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다. 동시에 이용자와 시민 곁에 더 다가가야 한다.
게임 산업이 싸워야 할 상대는 몸을 잠시 숨겼다. 없앨 수 없다. 적은 '리스폰'이 된다. 리스폰은 게임에서 처치한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더 많고 더 강한 상대와 맞설 '아이템'이 필요하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