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후 기업 경영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는 요인을 꼽는다면 외부로부터 투자 자금을 수혈 받을 때다. 누군가로부터 금전적인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회사 경영권을 비롯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새로운 역학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 같은 전문 투자 자금을 활용할 경우, 경영권을 비롯한 회사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요구된다. 개인 자금만으로 회사를 운영할 때는 혼자서 편하게 결정하던 내용을 이제는 기안을 작성하거나 양식을 갖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외부 투자자의 동의를 구하면서 처리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갖추기 위한 시스템 도입과 행정 직원의 추가 고용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가족 내지 지인으로부터 필요 자금을 조달할 때는 정례적인 업무 보고 및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참여 등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회사 운영상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내지 지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경우에도 많은 부분 변화가 발생한다. 심지어 창업자 마음가짐과 회사 운영 방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로는 위험 선호도에 대한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관련 선행 연구 결과, 외부 자금을 활용한 창업가보다 본인 및 가족 자금으로 창업한 사람이 보수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인과 가족 자금은 외부 투자자 자금보다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본인과 가족 자금을 활용하는 기업가는 상대적으로 소액 형태의 투자를 선호하며 과감한 투자를 지양하는 기질이 높아진다. 또한 회사를 매각할 때도 조기에 현금화하려는 성향이 더욱 강해진 나머지 제값을 받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가족 및 지인 자금으로 창업한 기업가는 회사 경영이 어렵다 하더라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기질이 높다. 가족 및 지인 자금을 사용해 회사를 경영하다 중도 포기할 경우, 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사업 포기 이후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 또한 걱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요인으로 인해 외부 투자 자금을 활용했을 때보다 가족과 지인 자금을 활용한 창업가는 끝까지 사업을 지속해 보려는 기질이 더욱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족과 지인 자금을 활용한 창업가는 외부 투자자금을 활용한 창업가보다 고독해진다. 많은 창업가가 창업을 통해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험난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이러한 험난한 여정 속에서 가족은 든든한 피난처였다고 회고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 자금을 활용하는 순간,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들의 투자 자금이 떠오르게 되고, 하루 속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퇴근 이후 가족에서 회사 운영의 어려움을 터놓고 말하기도 힘들어진다. 즉 가족은 더 이상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가족과 지인은 전문 투자자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외부 투자자금을 활용할 때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전문적인 조언 내지 자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가족 및 지인들은 관련 분야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투자를 결정하고 나서 뒤늦게 관심을 보일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질문 내지 현실 부합성이 떨어지는 제안 등으로 경영 활동을 오히려 방해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처럼, 가족과 지인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경우에도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가족과 지인이 상대적으로 쉽게 투자를 결정한 것은 사실 냉정한 판단 속에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부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선한 마음에 큰 상처를 주지 않도록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