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면 어떨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통신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산업이 됐다.
통신은 기술 지향 산업이다. 첨단 기술을 떼어 놓고 통신을 이야기할 수 없다. 롱텀에벌루션(LTE)과 스마트폰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이 합작해서 만든 '디지털화'가 문자 그대로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0과 1로 바뀌지 않는 것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취급을 받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통신 산업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게 정치다. 달리 말하면 국민 다수의 생각이다. 최고와 첨단을 원하는가, 뒤로 물러서더라도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가는 다수가 합의할 사안이다.
서유럽을 보자. 세계 유수의 통신장비 기업을 둘이나 보유한 그들이 기술이 없어서 낡은 통신 인프라를 유지하는 게 아니다. 좀 느리고 불편해도 저렴함을 택하는 사회 합의 결과다.
사실 우리나라도 어렵지 않다. 통신비를 낮추는 대가로 LTE 통신망으로 돈을 버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국민이 이런 길을 택한다면 가지 말란 법도 없다.
우리 사회가 통신 산업에 투영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 고찰이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전혀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원하면서 저렴한 가격까지 요구한다.
국민 모두에게 물은 적은 없지만 역대 정권 가운데 통신을, 통신을 정점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경제 성장 엔진으로 여기지 않은 사례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5세대(5G)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자고 다그치면서 동시에 보편요금제를 요구한다. 5G와 보편요금제를 동시에 달성하라는 건 가치 충돌의 극치다. 보상은 없고 희생만 강요하는 모양새다.
이쯤이면 적어도 서유럽처럼 정치가 통신의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 줘야 한다.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이유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