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비 10분의 1밖에 못 건진 적자 서비스 전락
KT와 SK텔레콤이 조만간 와이브로 서비스를 중단한다. 우리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서비스에 들어간 와이브로가 사실상 롱텀에벌루션(LTE),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등에 밀려 소멸될 처지에 놓였다.
KT와 SK텔레콤은 13일 본지 취재 결과 올해 말 와이브로 사업 철수를 목표로 정부에 사업철회 신청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와이브로 가입자가 지속 감소하고 수익은 정체를 거듭하는 반면 연간 100억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망 유지 비용을 두루 감안한 결과다.
양사는 이 같은 상황에서 와이브로 유지가 실익이 없다고 판단, 철수 절차를 밟고 있다. 주파수 이용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라도 전향 조치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와이브로는 '무선 브로드밴드인터넷(Wireless Broadband Internet)'을 줄인 말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통 기술이다. 1㎞ 이내에서 10Mbps급 다운로드 속도로 이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속 120㎞로 달리는 자동차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KT와 SK텔레콤이 2006년부터 서비스해 왔다.
KT 관계자는 “와이브로 중단과 관련해 내부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 “와이브로 이용자가 LTE 등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프로모션을 진행하겠다”며 와이브로 중단을 기정 사실화했다. SKT 관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KT 2세대(2G) 종료(15만명)와 SK텔레콤의 아날로그 이통 종료(6만명) 사례를 감안할 때 와이브로 이용자가 10만명 수준으로 감소하면 사업권 폐지 신청 등 행정 절차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와이브로 가입자는 2012년 104만명까지 늘었지만 2018년 1월 현재 33만4000명으로 급감했다.
양사는 2006년 와이브로 상용화 이후 2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KT는 2018년까지 약 1조2000억원을 누적 투자했고, SK텔레콤은 9200억원을 투자했다. 반면에 누적 매출은 KT가 2000억원, SK텔레콤은 300억원에 불과했다. 투자 대비 매출이 10분의 1 수준이다.
양사는 2.3㎓ 주파수 할당에 따른 투자 의무가 종료됐지만 망 유지를 위해 연간 비용으로 100억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망을 유지할수록 적자가 심화되는 구조다.
국제 와이브로 표준화단체 와이맥스포럼은 2012년 12월 기술 표준에 롱텀에벌루션시분할(LTE-TDD)을 추가, 사실상 와이브로 기술 진화 중단을 선언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내년 3월까지 2.3㎓ 대역 와이브로 주파수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최소 대역을 남기고 KT(30㎒)와 SK텔레콤(27㎒)이 보유한 주파수 57㎒폭 가운데 40㎒폭을 이통용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전파 전문가는 2.3㎓ 대역에서 와이브로를 철수하고 5G 이통으로 전환하면 100㎒폭 저대역 '황금 주파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통사는 40㎒폭을 반납할 경우 남은 대역만으로는 정상 서비스가 어렵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통사의 와이브로 서비스 폐지 신청이 접수되면 이용자 보호 조치 계획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분석]애증의 와이브로, 5G로 부활해야
와이브로(Wibro)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통신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회심의 승부수였다. 우리나라가 와이브로 종주국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와이브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직면했다.
글로벌 주도권을 향한 도전 정신은 이어가되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점이다.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와 전문가는 이용자 보호를 전제로 와이브로 서비스 철수 절차와 더불어 와이브로 주파수의 5세대(5G) 이동통신용 전환 등 대안을 서둘러야 한다고 한 목소리다.
◇세계 최초 상용화
2003년 1월 삼성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와이브로 개발에 착수했다.
2003년은 초고속인터넷과 휴대폰이 동시에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기였다. 옛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 제조사는 이동하면서 인터넷에 자유롭게 연결하는 토종 기술을 개발한다면 이통 원천기술 로열티를 주는 나라에서 받는 나라로 역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시작됐다.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은 2004년 우리나라의 20년 미래를 책임질 'IT 839(8대신규서비스·3대인프라·9대신성장동력)' 전략을 수립하며 핵심 신규서비스로 와이브로를 내세우며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
2004년 12월 삼성전자와 ETRI가 세계 최초 와이브로 기술개발에 성공한데 이어 옛 정통부는 본격 상용화 준비에 착수했다.
정통부는 2005년 2.3㎓ 대역 100㎒폭을 와이브로 용도로 지정하고 57㎒폭(KT 30㎒폭·SK텔레콤 27㎒폭)을 '휴대인터넷' 용도로 할당했다.
KT와 SK텔레콤은 1년간 준비 끝에 2006년 6월 서울에서 세계 최초 와이브로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와이브로를 상용화하자 글로벌 통신사 이목이 우리나라에 집중됐다. 와이브로 다운로드 속도는 40Mbps(웨이브2 방식 기준)로 3G WCDMA의 14.4Mbps에 비해 3배가량 빨랐다. 롱텀에벌루션(LTE)에 비해 5년 앞서 초고속 무선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내리막길
초기 시장 전망은 밝았다.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이 기술 개발 대열에 합류한데 이어 2005년 와이브로 기술기준인 IEEE 802.16e가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았다. 2006년 8월 미국 스프린트의 와이브로 상용화를 시작으로 일본 KDDI와 러시아 요타 등도 상용화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은 무선인터넷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할 킬러 콘텐츠가 없던 시절이다.
옛 정통부가 와이브로 용도를 휴대인터넷으로 지정하며 음성을 탑재하지 않은 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인터넷 서비스만으로는 저변 확대에 한계가 분명했다.
2011년 상용화된 롱텀에벌루션(LTE)이 75Mbps 급 속도와 폭넓은 단말기 생태계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면서 와이브로 하락세가 가속화됐다.
와이브로 가입자수는 2006년 1000명으로 시작해 2011년 79만명, 2012년 12월 104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2018년 1월 33만명으로 줄었다.
와이브로 기술 진화 논의도 막을 내리면서 이통사에게 와이브로는 12년간 누적 투자 2조1000억원에도 누적 매출 3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3월 와이브로 주파수 할당기간이 종료되면 40㎒ 폭을 이동통신용으로 전환하고 이용자 보호를 위한 최소 대역만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5G로 부활 노려야
전파 전문가는 와이브로 주파수 명맥을 유지할 게 아니라 5G 전면 전환으로 확실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2.3㎓ 대역은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5G 주파수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 와이브로가 활용하던 2.3㎓ 대역은 총 100㎒ 폭으로 넓은 지역에서 1Gbps 이상 속도를 내기 위한 6㎓ 이하 5G 주파수 용도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5G는 핫스팟 지역에서 초고속 이동통신을 제공하는 6㎓ 이상 초고주파(밀리미터웨이브) 대역과 넓은 지역을 커버하기 위한 6㎓ 이하 대역으로 구성이 일반적이다.
홍인기 경희대 교수는 “5G 주파수 현황을 고려할 때, 와이브로가 종료되면 100㎒ 폭은 5G로 활용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글로벌 시장과 기술진화 추세에 부합하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이동통신공급자협회(GSA)도 2.3㎓을 유력한 5G 주파수 후보대역으로 선정했다.
와이브로는 업로드와 다운로드 대역을 구분하지 않는 시분할(TDD)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5G와 유사하다. 복잡한 재배치 과정없이 손쉽게 5G 주파수로 전환이 가능할 뿐 아니라, 기존 와이브로 중계기 등을 개발하던 중소기업이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데도 유리하다.
와이브로는 5G 시대를 준비하는 제4 이동통신사에도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 제4 이통을 위한 5G 주파수를 남겨달라는 사업자 요구를 과기정통부가 받아들인다면, 2.3㎓ 대역 100㎒ 폭을 신규사업자를 위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2.3㎓ 대역은 3.5㎓와 28㎓ 대역 경매를 준비하는 이동통신사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시급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제4 이통용 주파수로 준비한다면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슈분석]와이브로 철수, 예상 절차는···가입자 10만명이 기준 될 듯
와이브로 서비스 폐지를 위한 행정 절차가 주목받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기간통신사업자가 서비스를 휴지 또는 폐지할 경우에는 60일 전에 이용자에게 통보하고 충분한 이용자 대책을 마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폐지 승인 자체는 '네거티브' 규정이 적용된다. 과기정통부는 △구비서류에 흠이 있는 경우 △이용자에 대한 휴지·폐지 계획의 통보가 적정하지 못한 경우 △이용자 보호조치계획 및 그 시행이 미흡한 경우 △전시상황 등 국가비상상황을 제외하고 승인해야 한다.
이 같은 규정과 시장 상황을 종합하면 와이브로 폐지는 가입자수가 10만명가량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연말이 기준 시점이 될 전망이다.
1999년 KT가 씨티폰을 폐지할 당시 가입자수는 17만명가량이었고 SK텔레콤의 아날로그 이동통신 종료 당시에는 6만명이었다.
와이브로 폐지 절차에 참고할 만한 최근 사례는 2011년 KT 2G 서비스 종료다. KT는 2011년 6월 옛 방송통신위원회에 2G 서비스 폐지를 신청했지만 가입자가 81만명 남았다며 한 차례 반려됐다. KT는 같은 해 11월 가입자수를 15만명까지 줄이고 방통위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방통위는 2G 폐지 승인 조건으로 △이용자에게 우편 안내를 포함한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적극 알릴 것 △이용자 불편 최소화 △이용자 보호조치 이행실적을 보고할 것 등을 지시했다.
2G 서비스 종료는 01X 번호를 유지하고자한 시민단체로부터 행정 소송을 당하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 끝에 2012년 2월에야 최종 확정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와이브로 종료에 앞서 2G와 같은 혼선을 사전에 피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서비스 사업자의 확실한 이용자 보호 대책은 물론이고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이슈분석]이통사, 와이브로 고객 전환 '가속'
KT와 SK텔레콤은 와이브로 가입자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KT는 기업 고객 또는 모바일 백홀 활용을 제외하고 남은 와이브로 가입자 회선 수가 지난달 기준 21만명 수준이다.
KT는 일반 고객의 롱텀에벌루션(LTE) 전환을 서두르기 위해 10GB 요금제(월 1만1000원)를 이용 중인 고객이 LTE 에그+11 요금제(월 1만6500원)로 전환 가입하면 데이터 혜택과 추가 할인을 제공한다. 24개월간 월 요금 5500원(2년간 13만2000원)을 할인하고 연간 100GB 데이터를 추가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기존 와이브로 상품 해지에 따른 위약금도 면제한다.
최근에는 와이브로 고객이 롱텀에벌루션(LTE) 전환 가입하면 추첨을 통해 200만원가량 상품을 제공하는 등 서비스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가입자수가 5만명 수준으로 일반 가입자에 대한 특별 프로모션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대신 기업고객과 모바일 백홀용 회선으로 와이브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2006년~2017년 와이브로 누적 투자 및 누적 매출 현황>
<와이브로 연혁>
<와이브로 주파수 현황(단위:MHz)>
<전기통신사업법 통신서비스 휴·폐지 조항(제19조)>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