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진한엠앤비가 중국의 위(魏)·촉(蜀)·오(吳) 3국의 정치와 역사를 다룬 소설 '삼국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룬 책 5종을 내놓았다.
3000여 개 사자성어로 풀어가는 10권 완역의 '사자성어 삼국지'와 삼국지 역사 속을 걷는 듯한 240 명장면을 압축 묘사한 '원본그림 삼국지', 삼국지 속 서른일곱 번의 전투를 전술도와 그에 맞는 사자성어, 인물을 새롭게 조명한 '전략 삼국지' 등 3종이 눈에 띈다.
또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과 당시 배경을 그린 '삼국지 컬러링북'과 삼국지를 다시 잃도록 유도하는 초간편 삼국지 '넛지 삼국지' 등 2종이 나와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자성어 삼국지: 12년 동안 몰입한 역작, 고전미 살린 것이 특징
낯선 작가인 차정식(61)씨가 들고 나온 '사자성어 삼국지'는 이름 그대로 사자성어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책은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으로 시작한다. 천하의 대세는 나눠져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져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진다'며 사자성어로 풀어가는 형식이다.
인물성격도 사자성어로 엮어 간다. 장비를 묘사하는 글로 '신장팔척(身長八尺) 신장은 팔척이요. 표두환안(豹頭環眼) 표범머리에 고리눈이고 연함호수(燕〃虎鬚) 제비턱에 범의 수염이며 성약거뢰(聲若巨雷) 목소리는 우레 같고 세여분마(勢如奔馬) 기세는 달리는 말과 같다'고 했다.
모든 한문을 한글로 전환한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 저자 차정식(61)씨는 “고전을 너무 한글화하면 고전의 서술체계가 무너져 고전미를 살릴 수 없고 재미도 줄어든다” 면서 “그래서 한글화에 역행했다”고 했다.
번역을 위해 중국에 맞닿아 있는 키르기스탄으로 건너가 12년 동안 삼국지 완역에 몰두했기에 무게감이 있고 내용도 탄탄하다.
그가 평역이 아닌 완역을 고집한 것도 원작 나관중과 개작 모종강의 글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무엇을 첨가하거나 일부 재미가 덜하다고 해서 빼지도 않았다. 삼국지 본래 맛을 살리고자 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삼국지는 총 120회 분으로 돼 있는데 매 회가 끝날 때 마다 모종강의 평을 넣어 한층 더 재미를 준다.
감수는 과학도서 저술가이자 고전 번역가인 강병국(63) 박사가 맡았다. 오랫동안 언론에 몸담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문장을 다듬었다. 독자들이 현장감을 느끼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했다.
200수가 넘는 삼국지 한시는 시조시인 윤경희(53)씨가 감수했다. 윤씨는 이영도 문학상을 받는 등 중견 시조시인이다.
◇원본그림 삼국지=11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린, 채색화 240장면
열권으로 엮은 책이나, 만화로 읽던 삼국지와 달리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원본그림 삼국지'여서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채색화의 거장 금협중 화가가 11년 동안 그린 기념비적인 역작으로 그림에 맞는 압축된 글이 마치 풍운시대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나관중 삼국지의 충실한 계승자, 모종강 삼국지에는 120편의 그림이 있었다. 이 120편의 그림에 금협중 화가가 120편을 더해 총 240편 채색화를 완성한 것이다.
도원결의와 삼고초려, 적벽대전, 칠종칠금 하는 장면 등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볼 수 있어 마치 역사 속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양대 유성호 교수(53)는 “고전적 텍스트의 중요한 장면 장면을 아름답고 개성적인 채색화로 재현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삼국지의 스케일과 디테일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준다”면서 “삼국지 역사에 또 하나의 도약이자 장관”이라고 말했다.
중문학자 홍광훈(63) 전 서울여대 교수는 “그림속의 사람과 말, 칼 등이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듯하고 글과 그림의 절제미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일례로 삼고초려를 보면 대설이 펄펄 내릴 때 도착했으며 유비·관우·장비 삼형제의 인물 표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비가 현인을 구하려는 것이 마치 목마른 사람처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고전번역에 몰두하고 있는 강병국(62) 박사와 중국 4대 기서번역에 전념하고 있는 차정식(60)씨가 공동으로 평역한 것으로 삼국지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심오하면서도 압축적으로 그려냈다.
부록으로 △삼국지 속 인물들이 사용했던 무기 △삼국지에는 어떤 계략(計略)이 있었나도 눈길을 끈다.
평역자 강병국 박사는 “번역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어 밤을 낮 삼아 했다”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도록 하는 것이 번역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그림은 국내에 선보인 적이 없는 채색화로 소장가치가 매우 높다.
원본은 채회전본삼국연의(彩繪全本三國演義)이다. 저자들은 곧 일어판 번역도 준비하고 있다.
◇전략 삼국지: 서른일곱 번의 전투, 생동감 있고 명쾌하게 분석
삼국시대에 펼쳐진 서른일곱 번의 전투를 전술도와 그에 맞는 사자성어, 등장인물을 조화롭게 엮었다.
적벽대전, 관도대전, 박망성전투, 와구관전투 등 위·촉·오가 펼친 주요전투를 상세하게 그려넣은 전술도는 현장감을 더해준다.
어떤 장수와 군사가 어디로 와서 어디서 접전을 벌였으며, 어떻게 진격하고 패퇴했는지를 도면으로 상세하게 그려 전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일종의 전쟁에 대한 탐사로 지금까지 읽었던 삼국지와는 다른 버전이다.
차정식. 강병국 등 공동저자는 당시의 전투장면을 밀도 있게 조명해 전투의 승패요인을 면밀히 분석했다.
서울여대 교수를 지낸 홍광훈 박사(63)는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과의 싸움, 경영일선에서의 전략, 현대전에서의 군대운용 등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명예이사장인 이우걸 시조시인(71)은 “특유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며, 전쟁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고 전했다.
조조와 유표·장수 연합군이 벌인 안중전투는 출기불의(出其不意, 남의 생각이 미치지 않은 틈을 타서 행동을 취하고), 공기무비(攻其無備, 적이 준비하지 않았을 때 허를 찔러 공격한다)라는 사자성어를 붙였다.
동서고금에서 가장 치열했던 수전으로 손꼽히는 적벽대전을 사자성어로 '삼강수면(三江水面) 삼강의 물위에 화축풍비(火逐風飛) 불이 바람을 쫓아서 날아가 일파통홍(一派通紅) 온통 새빨간 불길이 만천철지(漫天徹地) 하늘과 땅을 뒤덮었다'고 전했다.
전투와 관련된 인물 90명은 연관성이 있는 3명씩 묶어 총 30컷으로 엮었다.
텍스트에 비주얼을 더한 것이 특징. 세밀한 전투장면, 적절한 사자성어, 압축적인 인물소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국지 컬러링 북: 인물 30편, 배경그림 120편 삼국지를 그리는 시간
'삼국지 컬러링 북'은 1914년 상하이 금장서국이 발행한 증상전도삼국연의(增像全圖三國演義)에 실린 그림을 바탕으로 1권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90명을 3명씩 묶어 30컷으로 만들었다. 2권부터 5권까지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120회 분의 그림을 30회분 씩 나눠 4권으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색칠하기를 완성하면 삼국지 속 인물과 당시의 장면을 명확히 볼 수 있고 삼국지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다. 굳이 '색칠을 잘해야 되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혼족'이 늘어나고 '나 홀로'의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대화상대가 줄어들면서 '고독사'가 빈번해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중요치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건강은 장수의 필수과목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삼국지컬러링 북'은 자연스런 친구가 될 수가 있다.
긴 이야기의 중국소설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요약된 그림을 통해 재미와 색감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
어린이나 공부압박에 시달리는 청소년에겐 잠깐의 휴식이 되며 창의력을 키워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에 지치고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는 사회인들에겐 머리를 식혀주는 작은 통로가 된다.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특성상 사회적 책임이 노후에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중·장년층에게도 '삼국지 컬러링 북'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저자 강병국(63) 박사는 “컬러링 북은 요즘 가장 핫한 독서 트렌드가 되고 있다” 면서 “컬러링 북에 색을 입히면 우울증이 완화되고 불안장애를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컬러링 북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집중력을 향상시켜준다는 학계의 보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가수 아이유가 나온 드라마 '프로듀서'와 조인성이 나온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컬러링 북이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이 소개되면서 컬러링 북은 이제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취미용품 가게에 이들만 따로 취급하는 공간이 있을 정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힐링 붐을 타고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넛지 삼국지: 핵심에 접근한 초간편 삼국지
'넛지 삼국지'는 넛지의 본래 뜻인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바른 선택을 돕는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막대한 시간을 들여 열권의 삼국지를 읽도록 결심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 다시 삼국지를 읽도록 권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넛지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지 않았거나, 읽은 독자들의 옆구리를 쿡 찔러줌으로써 삼국지를 읽게 하고, 다시 명장면을 회상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물 30편(90명), 풍속 120편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과 당시 배경을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는 점에서 '초간편 삼국지'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유비의 손자 유심은 부친 유선이 위의 등애에게 항복하는 것을 만류하다 듣지 않자 비분강개해 처와 자식의 목을 베어 할아버지인 유비의 무덤에 가지고 가서 대성통곡하고 자결했다. 책은 수급 두 개를 그려 넣어 당시의 상황을 웅변해 준다.
관우와 황충, 허저와 마초의 용쟁호투,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거나 서서가 유비를 떠나는 모습, 유비의 삼고초려, 천하를 놓고 다투는 적벽대전 등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들이 일목요연하다.
한권으로 슬쩍 삼국지를 읽고 싶어 한다면 '넛지 삼국지'는 안성맞춤이 될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지혜의 보고로 끊임없이 인용되며, 회자되는 삼국지를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넛지 삼국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가볍게 보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이 책은 부담 없이 하나의 거대한 문학 산맥인 삼국지를 슬며시 들여다보고 되새김질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