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문과생이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다. 최근에 유명 작가가 가상화폐를 주제로 한 TV토론회에서 과학기술 지식이 부족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 구분은 일제 잔재라는 지적이 있었고, 2001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을 마지막으로 문·이과 구분이 공식 폐지됐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여전히 문·이과가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학문에 융합 흐름이 나타나면서 오늘날에는 지식 영역 경계에 따라 각 학문을 개별 연구하지 않고 통합 접근하는 것이 주류로 떠올랐다. 이과 영역에 속하는 과학기술의 진보는 빠르다는 말로 부족하고, 오히려 사회 변화를 급속도로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AI) 과학자 겸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2040년께가 되면 AI 발전으로 인한 기술 변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미치는 영향이 넓어져서 인간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하는 기점이 온다고 예측했다.
변화 시기에 시민과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과학기술을 이해하지 않고서 사회, 경제, 정치, 외교 등 이슈를 다를 수는 있을까. 이 같은 의문은 지금까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경찰에서 다루는 범죄마저도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가상화폐 등 첨단 기술과 관련돼 있으니 이를 수사하고 분석하는데 첨단 과학기술 지식을 갖춘 전문 수사관이 필요하다. 범죄에 대해 기소하거나 판결해야 하는 검사와 판사도 기소 내용에 담긴 기술을 법리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하면 판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이 시민의 삶 전체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하는데 문과 출신이라고 해서 기술 지식이 부족함을 용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중요 정책의 방향성을 정하거나 사회 어젠다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거나 가짜뉴스에 대한 사실 여부를 체크할 때는 더욱 관련된 전문 과학기술 지식을 세밀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에 따라서 그런 전문성으로 시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전문가에게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대학 중심으로 생산된 지식이 전통 저널리즘, 이벤트, 온라인 교류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형식이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기존 관점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더 이상 대학이 지식 생산을 독과점하는 주인공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터넷 공간에서 많은 정보가 결합하고 융합해서 대중이 스스로 정보를 검증하고 방향을 만들어 가는 형식으로 변화해 가고 있으며, 정보 유통량과 접근성을 고려할 때 주도권을 완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사용하는 전통 교재는 이미 수년 전에 출간된 것이며, 출간되기까지 지식이 정리되고 형식을 갖추기 위한 시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지금 발생하고 있는 현상과는 수년의 괴리가 항상 존재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물론 약학, 철강 등 과학기술 수명이 길거나 기초 연구가 중요한 분야는 문제가 없겠지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로 일컬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과학기술은 대부분 수명이 아주 짧거나 최신 기술이기 때문에 대학 역할은 더욱더 사유의 씨앗을 제공하는 기초 교양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소용돌이치고 변화하는 전통 과학기술 지식의 생산과 유통 프레임워크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여론 주도자들이 우리 사회에 새롭게 제시된 주제를 다루는 태도는 대중에 대한 파급력과 민감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직 결과도 없고 정답도 없는 머나먼 대장정의 첫걸음을 내디디는 시점에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문송한' 관점의 프레임을 씌우고 사기로 단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과학 및 합리에 맞는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은 적게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다양한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배제하고, 크게는 기술 환경에 대한 통찰력과 나아가 기술 철학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과학기술과 사회철학이 필요하다는 근간에서 이 작은 시장의 왜곡을 억제하고 성공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야 한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사 결정에 실패할 수 있다. 21세기 사고방식의 정부 정책을 기대하려면 '문송'한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kevin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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