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文의 '운전대'

불과 두 달여 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하와이 지역을 사정거리로 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쏴 올렸다. 신년사에서는 '책상 위 핵단추'를 언급했다.

극한 상황으로 치닫던 북한의 절규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전환했다. '남북 정상회담' 제안과 함께 '통일'까지 거론했다.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장을 여는 주역이 돼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워달라”며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측의 만남을 보면 숨 막히던 북한과의 설전이 말 그대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문 대통령에게 방북초청이라는 '파격 카드'를 꺼내든 북한의 숨은 뜻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2012년 김 위원장이 자신의 통치체제를 구축한 이래 남한 최고지도자에게 평양 방문을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권과 대북 전문가의 추측도 각양각색이다. 문 대통령을 '카운트파트'격으로 삼아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보는 시각이 있다. 또 다른 정략적 꼼수가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어찌됐든 문재인 정부에 던져진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모두가 조금씩 들뜬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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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 정부가 어려운 정국 속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이끌어 낸 것은 박수칠 만하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신호탄이 됐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 말이 있듯, 어렵게 찾아온 남북 대화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내건 '한반도 평화구상' 퍼즐을 맞춰나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첫발이 될 수 있다.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는 있다. 정상회담 제안에 일희일비하거나 성급해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 개선과 함께 북핵 문제는 여러 나라와의 국제관계가 얽혀있는 중대한 현안이다. 문 대통령도 '여건' 조성이라는 단서를 달았듯 고차원의 방정식 속에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북한이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핵포기'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방법은 대북관계 개선 등을 명분으로 미국 등 국제 사회를 설득해 북한을 만나는 것이다. 다만 우리와 북한이 그만큼의 신뢰를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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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10일 청와대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문 대통령은 자신이 주장한대로 '운전대' 앞에 앉을 기회를 잡았다. 북한과의 회담 계기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막다른 길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대화할 용의가 없다”는 북미 양측 사이에서 '중재외교'를 슬기롭게 펼쳐야 한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속도·거리 조절을 해야 한다. 대북 압박을 강조하는 일본과는 확실히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미 합동군사훈련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자 문 대통령은 “내정 간섭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일침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고위급 대북특사 파견에서부터 미국과의 공조 등을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에 따라 평창발 훈풍의 불씨를 살릴 수도, 없앨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베스트 드라이버'로 남기 위해선, 이 중대한 역사적 고비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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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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