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거꾸로 가는 인터넷산업 육성...규제 일변도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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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인터넷기업을 옥죄는 규제 입법이 잇따른다. 새로운 서비스 등장을 어렵게 하는 시도부터 인터넷 실명제까지 고개를 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신산업을 위한 혁명적 규제 혁신을 밝혔지만 이런 의지를 무색케 할 정도다. 인터넷업계에선 정부와 국회의 엇박자 탓에 규제 혁신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글로벌 기업과 역차별 해결 없이 규제만 강화하면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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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혁신 의지에 역행하는 입법 줄줄이

문 대통령이 강조한 혁명적 규제 혁신은 우선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방식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정 경쟁 환경을 저해,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규제도 혁파한다. 기업의 실행 속도를 높여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인터넷산업 관련 입법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부가통신역무(인터넷서비스)를 △인터넷 주소·정보 등의 검색과 전자우편·커뮤니티·디지털콘텐츠 등을 종합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 △음성·데이터·영상 등 송신 또는 수신을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4개 유형 이외 부가통신역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도록 규정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인터넷 신산업에 새로운 진입장벽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ICT뉴노멀법'도 인터넷산업을 제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법안은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포털에 대한 경쟁상황평가를 실시하고, 방송통신발전기금 부과 안을 담았다.

경쟁상황평가는 시장 지배 사업자 영향력을 감시하기 위해 마련된 규제다. 이를 위해 어디까지 포털 시장이고 평가 대상이 되는지 규정하는 시장획정이 선행돼야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포털 기업은 매년 주요 서비스별 회계상황과 가입자 통계 등 자료를 정부에 제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은 정부 허가를 통해 공중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하는 데 따른 반대급부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이 법안은 자유경쟁 시장인 인터넷 시장을 통신·방송 같이 정부 허가를 받는 과점시장 수준으로 규제한다는 업계 반발에 직면했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인터넷 실명제까지 발의됐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하루 이용자 1000만명 이상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댓글에서 본인확인조치를 의무화한다. 주요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댓글 실명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댓글에 대한 본인확인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 이용자가 해외 서비스로 망명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규제 입법 “산업 이해 낮은 무리수” 지적

학계와 업계에서는 최근 이어지는 인터넷산업 규제가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수라고 지적한다. 인터넷 포털에 대한 시장획정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시장 특성상 해외 서비스와 국경 없는 경쟁이 이뤄지고 변화 속도가 빠르다. 해외 서비스 매출을 알기도 어렵고 애초에 서비스 이용 가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 포털 시장획정 사례가 세계에서 유래 없는 이유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도 지난해 '2016년 경쟁상황평가 보고서'에서 “인터넷 포털은 진입 장벽이 낮고 시장 변화가 빨라 시장획정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터넷서비스 역무를 법으로 유형화해 열거한 사례도 찾기 어렵다.

인터넷 실명제는 과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까지 받았다. 2007년 하루 접속자 10만명 이상 웹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게 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이용자 사이에선 유튜브 망명이 이어졌다.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됐지만 이 기간 다음TV팟, 판도라TV 등 국내 동영상 플랫폼은 이용자가 급감했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인터넷 시장에 대한 무리한 시장획정은 신산업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역차별 대표 사례로 꼽힐 만큼 공정경쟁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업계 “혁신 소외, 역차별 심화” 우려

인터넷업계는 정부 혁신 기조와 대치되는 입법 시도에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한쪽에서는 규제 완화를 외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 강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국내 인터넷기업들은 2월 임시국회를 주목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다른 산업과 달리 지원은 고사하고 공정 경쟁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서비스에 더욱 밀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감돈다.

국내 인터넷시장에서 글로벌 서비스 지배력은 점점 강화된다. 메조미디어가 발표한 '2018년 업종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디지털 동영상 광고 시장에서 유튜브와 페이스북 합산 점유율이 69.2%에 육박했다. 이는 1년 전보다 5.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반면 국내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19.5%로 떨어졌다. 1년 사이 3.9%포인트 줄었다.

국내 인터넷기업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 규제 입법 시도가 이어지면서 정부 규제 혁신에서 인터넷산업만 빠지게 될까 불안하다”면서 “대부분 규제안이 속도감 있는 신산업 시도를 어렵게 하는 내용이라 통과될 경우 혁신 경쟁에서 글로벌 기업에 더욱 뒤쳐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학계에서는 공정하고 건강한 인터넷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법안 마련 시 인터넷 산업 특성과 업계 목소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역차별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법안에 역외 적용을 명시하는 것으로는 글로벌 기업에게 규제를 집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부터 규제하고 보자는 태도는 기울어진 시장 환경을 더욱 가파르게 만들 우려가 크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규제를 고려할 때 공익적 목적이 분명하고 달성하려는 규제 수단이 적당한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면서 “이용자와 사업자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않을 경우 공정경쟁 환경을 저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