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이 22일(현지시간) 삼성·LG전자 등 수입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확정하자, 우리 통상 당국은 즉각 'WTO 제소'로 맞대응에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도 진행 중인 가운데, 양국 통상 당국이 한치 양보 없는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3일 미국 정부가 수입 세탁기 및 태양광 제품을 대상으로 확정한 세이프가드와 관련해 “부당한 조치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날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민관대책회의에서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며 이런 취지에서 WTO 협정상 보장된 권리를 적극 행사할 계획”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WTO 회원국 간 분쟁의 최종 판단자 역할을 하는 WTO 상소기구 위원을 지낸 김 본부장은 “과거 WTO 상소기구 재판관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번에 제소할 경우 승소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2002년 철강 세이프가드, 2013년 세탁기 반덤핑 관세, 2014년 유정용 강관 반덤핑 관세 등 미국의 과도한 조치를 제소해서 여러 번 승소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은 “정부와 업계는 그동안 세이프가드 문제점과 부당함을 다양한 채널로 미국에 적극 제기했지만, 미국은 국제규범보다 국내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한 조치를 결국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WTO 협정상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려면 △급격한 수입 증가 △국내 산업의 심각한 피해 △급격한 수입 증가와 심각한 산업피해 간 인과관계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세이프가드는 이런 발동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국산 세탁기는 산업피해 원인이 아니라고 판정했는데도 최종 조치에 한국산 세탁기를 수입규제 대상에 포함한 것을 감안할 때 이번 조치는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해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데도 우리 투자기업에 불이익을 가한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도 요건을 충족치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 태양광 산업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풍력과 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과의 경쟁 격화와 경영실패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 결과임에도 이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세이프가드 조치 대상국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적극 협의할 계획”이라며 “동시에 보상 논의를 위해 미국에 양자협의를 즉시 요청하고 적절한 보상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 제품에 대한) 양허정지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허정지는 현재 우리나라가 미국산 제품에 적용하는 무관세 또는 관세인하 조치를 철회하겠다는 의미다.
김 본부장은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16년 만에 세이프가드를 꺼내 들었지만, 그동안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활발히 진출해온 우리 기업의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는 업계 애로 해소와 국익 수호를 위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22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생산한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승인했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수입산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서는 TRQ(저율관세할당) 기준을 120만대로 설정했다.
첫해 120만대 이하 수입 물량에 대해선 20%,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그 다음 해인 2년 차의 경우, 120만대 미만 물량에는 18%, 120만대 초과 물량에는 45%를 부과하고, 3년 차에는 각각 16%와 40% 관세가 매겨진다.
한국 등에서 수입한 태양광 제품에 대해서는 2.5GW를 기준으로 1년 차에 30%, 2년 차 25%, 3년 차 20%, 4년 차 15%의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