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학기술계 소식에 '사퇴 압력'이나 '재신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정권 초기에 늘 등장했던 단어다.
이번 정부는 인수위 절차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장관 인선이 늦어졌다. 그러다 보니 새 정부가 출범하고도 무려 8개월이 지났음에도 과학기술 분야 산하 기관장 인선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잡음이 나돈다.
실제 사퇴 압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추측된다. 이해도 된다.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을 보수정권이 지배했고 공공기관 기관장 인선도 그 색깔에 맞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의 정치 성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새 정부 입장에서는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기관장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기관장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라고 할지라도 정부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공조해야 하는 자리다.
정부와 과기계 간 소통이 원활해야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 과기인들도 더 이상 위축되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기초 과학기술 분야는 민간에서는 쉽게 투자할 수 없는 분야다. 정부 출연연은 이런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많은 실패를 거쳐 조금씩 쌓아나가야 하는 것이 기초과학이다.
정부는 이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과기계는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사회, 경제, 문화 현상이 과학과 융합되어 나타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아직은 많은 과학기술인이 정치에 예속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비록 정치적 배려로 내려온 기관장이라고 할지라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도록 종용하는 '사퇴 압력'에는 비난의 화살을 보낸다. 그래서 정부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경우도 많다.
기관장이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시행할 수 없다. 출연연에 이런 공백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큰 손실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매우 조심스럽게 살피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에도 민감하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를 막기 위한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기관장 임기를 정부 집권 기관과 동일하게 맞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와 출연연 기관장이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제 사퇴 압력도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마침 개헌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참에 출연연 기관장 임기를 정권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과 시행규칙을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양수석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장 ssyang@ka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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