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하 협력재단)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하 상생기금)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 기업의 기금 재원 출연이 자칫 '기업 팔 비틀기'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협력재단에 따르면 8일 현재 약 260억원의 상생기금 재원을 마련했다. 출범 1년이 다 지났지만 연 조성 목표 1000억원의 30%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남부발전은 협력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농어촌 지역 일자리 창출 지원과 농어민 소득증대 사업에 5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앞서 한국남동발전과 한국국토정보공사(LX) 등이 재단에 출연을 결정했다.
상생기금은 지난해 1월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FTA농어업법) 개정에 따라 도입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이익을 얻은 민간 기업의 자발적 출연으로 10년간 총 1조원 규모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기금을 운영·관리하는 협력재단의 이름에도 농어업이 추가됐다.
1조원 규모 기금 조성을 위한 목표는 연 1000억원이지만 협력재단이 1월 현재까지 조성한 기금은 260억원에 불과하다. 기금을 출연해야 할 민간 기업이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상생기금과 재원 출연 협약을 체결한 기업 가운데 민간 기업은 한솔테크닉스와 현대차 2개사에 불과하다.
민간 기업이 출연을 꺼리는 이유는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출연 때문이다. 현재 1심 진행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 재판에서 대기업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 여부가 핵심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 대기업 사회공헌사업 담당자는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지금처럼 소송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이사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재원 마련이 급한 협력재단에서도 적극 기금 모금에 나서기도 어려운 처지다. 협력재단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 민간 기업이 재원 출연을 꺼리는 상황”이라며 “분위기 자체가 이렇다보니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FTA 체결로 성과를 얻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목적으로 조성되는 기금인 만큼 강제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산업부 등 정부 차원에서도 한·미 FTA 체결에 따른 직접 이익을 집계할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모금해야 할 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민간 기업의 참여가 저조할 경우 기금에 필요한 재원을 공공기관이 모두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FTA농어업법에 따르면 상생기금 조성액이 부족할 경우 부족분 충당을 위해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한다.
농축산업계 관계자는 “당초 FTA 체결 당시부터 이야기되던 무역이익공유제 등 농어업 보호 대책이 후퇴해 정해진 내용이 상생기금 도입임에도 정작 기업은 각종 핑계로 출연을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력재단 관계자는 “상생기금 출연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발전 공기업도 FTA 체결에 따른 직접 이익을 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농어업 발전으로 인해 국내 발전 산업도 동반성장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출연에 나선 것”이라며 “출연금의 용도와 사업을 지정할 수 있는 만큼 민간 기업 역시도 농어업계와 상생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등 당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