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올해 상반기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절차가 대폭 개선된다. 평가 기간이 3분의 1 가량으로 단축되고 경제성 평가는 완화된다. 비용·효과 일변도의 경제성보다 잠재성, 적시성이 중요한 R&D 특수성을 반영한 예타가 기대된다.
국회는 지난 달 29일 본회의를 열어 국가재정법 개정안,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두 법안은 그 동안 기획재정부가 수행하던 국가 R&D 예타 업무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위탁하도록 했다. 법은 공포 3개월 후 시행된다.
일정대로라면 상반기에 과기정통부가 R&D 예타 업무를 위탁받아 시행한다. 과기정통부는 그 동안 본 예타 이전의 기술성평가만 실시했다. 새 제도에선 기술성평가와 예타를 모두 한다. 두 평가를 통합, 전체 평가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구상을 세웠다.
예타는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 3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국가 사업의 추진 타당성을 사전 평가하는 제도다. R&D 사업도 이 평가를 통과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 R&D 사업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타 분야 대규모 사업과 성격이 다르지만 같은 체계 안에서 평가받았다.
R&D 사업은 다른 나라와 기술 경쟁 속에 이뤄지는데, 예타에만 평균 20개월을 소모하면서 사업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 효과를 특정하기 어려운 기초·원천 R&D 사업은 예타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축소됐다.
문재인 정부는 R&D 예타를 과기정통부로 따로 떼어내 특수성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두 법안에 관련 내용을 명시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내내 예타 업무 수탁을 전제로 개선안을 준비했다.
평균 소요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고 사업 특성 별로 경제성 평가를 완화한다. R&D 사업의 기초·원천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 원안 중심으로 평가한다. 법 개정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상반기 내 '예타 혁신'을 추진한다.
관련 법 조항이 '위탁할 수 있다'로 표현돼 해석의 여지를 남겼지만 실제 위탁 가능성이 높다. 해당 조항은 예타 일반 사무에 대한 기재부의 소관을 명시하고, 국가 R&D 사업에 대한 예외를 언급했다. R&D 예타 특수성을 반영한 게 개정 취지다.
부처 간 합의도 이뤄졌다. 기재부와 과기정통부는 법 개정 과정에서 예타권 '이관'을 놓고 갈등을 겪다 국무조정실 중재로 '위탁'에 합의했다. 국가 R&D 예타를 과기정통부가 실질적으로 수행하도록 해 향후 문제가 생기면 원상복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개정된 법의 '위탁할 수 있다'는 문구는 부처 간 합의에 따른 위탁을 전제로 만들어진 조항”이라면서 “양 부처가 법 개정 전부터 꾸준한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실질적인 예타 업무 수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R&D 예산 총지출한도(실링) 공동 설정이 무산된 것은 향후 과제로 남았다. 일부 의원 반대로 과기정통부가 기재부와 실링을 공동 설정할 수 있다는 조항은 삭제됐다. R&D 예산의 총 지출한도는 기존처럼 기재부가 단독 설정한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