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처벌이 먼저(?)…뒷북 행정에 '카풀'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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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강사 A씨는 세 개 대학을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강의가 끝나면 곧장 다른 학교로 이동해 수업한다. 혼자 차를 몰고 가는 게 기름 낭비라고 여겨 카풀을 종종 이용한다. 하지만 최근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하루에 3회 이상 카풀을 운행한 기록이 한 차례 발견됐다며 경찰에서 출석을 통보했다. 한술 더 떠 관할 구청에선 A씨 차량 번호판을 때 가겠다고 벼른다. 유상운송을 했다는 이유로 운행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자동차 영업사업 B씨는 두 군데 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 개 사업소에서 일이 끝나면 다른 곳에서 업무를 보는데, 이때마다 카풀을 부른다. 하루 일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카풀을 쓴다. B씨는 신문물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껴왔다. 그러나 날벼락이 떨어졌다. 유상운송 혐의로 경찰서에 불려가게 된 것이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면서 앞일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까지 내몰렸다. 관할 구청에서도 운행정지 처분을 통보, B씨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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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 서비스 이미지.(사진=풀러스 제공)

카풀 앱이 혼란에 빠졌다. 불분명한 법 정비에 앞서 카풀 드라이버에 대한 제재가 우선되면서 공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택시업계 반대 시위, 경찰 조사까지 겹치면서 카풀 시장은 패닉 상태다.

뒷북 행정이 불씨를 지폈다. 20년 전에 만든 법으로 새 시대를 제단하다 보니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말로는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면서 신산업 육성, 보호는 뒷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기존 업계와 마찰이 불가피하다. 상생 방안을 찾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관계 당국은 손 놓고 있다.

◇신산업 미래 쥔 '법원'

카풀 앱 논란이 법원으로 넘어갔다. 업계 양대산맥 중 하나인 럭시의 카풀 드라이버 일부가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이 이들을 유상운송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기 때문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조를 근거로 문제 삼았다. 이 법은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을 금지한다. 다만 출·퇴근 시 승용차를 함께 탈 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경찰은 예외 조항 중 출·퇴근 범위를 엄격히 제한했다. 하루 세 번 이상 운전한 드라이버를 수사 선상에 올렸다. 출·퇴근 때 각각 1차례씩 운행을 했다면 3회를 넘길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럭시 드라이버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지방자치단체 행정처분 대상에도 포함됐다. 드라이버가 속한 자치구별로 집행 속도는 다르지만 이미 처분을 내린 곳도 있다.

처분 결정을 받은 드라이버는 차량 번호판과 자동차등록증을 뺏긴다. 최대 180일 동안 운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처분 명단에 오른 드라이버 중 상당수는 생계형 운전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럭시 변호를 맡은 이정환 마스트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출·퇴근 용도로 카풀을 사용했음에도 불합리한 처우를 받은 이용자를 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모든 경우의 수를 총동원, 헌법소원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풀 앱 풀러스 사태도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을 드라이버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이 같은 내용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연근무제와 같은 근로 환경 변화에 맞춰 드라이버에게 선택권을 준 게 문제가 됐다. 럭시와 마찬가지로 출·퇴근 범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오전 9시 이전 2시간, 저녁 6시 이후 2시간을 출·퇴근으로 해석하는 전통적 기준에 부딪혔다.

풀러스는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사법기관의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론화 과정 없이 신산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선 업체, 사용자만 책임을 떠안는 형국”이라며 “사회 변화와 혁신 가장 밑단에 있는 경찰, 법원에 회사 존폐를 맡겨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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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시 서비스 이미지.(사진=전자신문DB)

◇평행선 긋는 택시·카풀·정부

카풀 앱에 강한 견제구를 날린 건 택시다. 생업이 달린 문제라 강력하게 맞선다.

택시 업계는 유상운송이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법 취지가 출·퇴근 시간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카풀을 허용한 것이라며 나머지 시간대 서비스는 법 위반이라는 판단이다.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로 꼽는다. 택시는 영업용 차량 보험에 가입, 사고 보상 범위가 넓지만 카풀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운전자에 대해서도 범죄경력 조회 같은 최소한의 신분 검증 절차를 밟는 택시와 달리 누구나 차를 몰 수 있어 사건·사고에 노출돼 있다고 본다.

열악한 업계 사정도 알린다. “택시 가격이 10년 새 2~3배 뛰었다”며 “지자체별로 다르긴 하지만 요금도 오랜 시간 올리지 못해 택시 회사, 기사 모두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택시 업계는 국회에 관련 입법을 요구하는 등 카풀 앱 확대에 제동을 걸 방침이다.

카풀 앱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정면 돌파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럭시는 소송에 휘말린 드라이버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시장 위축에 회사 운영을 걱정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변호인단을 꾸려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계획이다. 모호한 규정 탓에 신산업이 위축되는 현실을 바로잡을 목표다.

법 위반이라는 공격에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조 예외 조항을 들어 반대 논리를 내세운다. 돈벌이 목적으로 카풀 앱을 사용한 드라이버는 탈퇴 조치하겠지만 불분명한 법 때문에 위기에 놓인 이용자는 전력을 다해 구할 각오다.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비판에 대해선 “매칭이 이뤄지는 순간마다 드라이버 차량·인적 정보가 탑승자에게 전달되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까지 알릴 수 있다”며 “탑승자 단체보험에도 가입해 매칭 즉시 보험이 자동 적용된다”고 맞받아쳤다.

사고 위험에 대해서도 “약 300만회에 달하는 누적 매칭 건수 중 사고는 단 두 차례 발생했다. 이마저도 경미한 접촉 사고였다”며 “출·퇴근 동선이 일정한 데다 혼자가 아닌 남을 태우고 운전한다는 점이 안전 운행을 유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정중동이다. 서울시가 위법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경찰 조사까지 요청, 실행에 옮겼으나 국토교통부는 별다른 행동이 없다. 내달 중순 열릴 4차 산업혁명위원회 토론까지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거 콜버스 논란 때도 비슷했다. 버스·택시 규정을 넘나드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해 업체 간 마찰이 일었지만 정부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변화를 완성하는 데 민간기업, 서비스 사용자가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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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 서비스 이미지.(사진=럭시 제공)

◇출·퇴근 논란, 누구 말이 맞나

카풀 앱 논란 뇌관은 출·퇴근 시간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이 시간을 유연하게 판단하자는 게 카풀 앱 주장인 반면 택시를 비롯한 규제기관은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2002년 대법원 판례는 출·퇴근을 '주거지에서 사업주가 지정한 장소까지 이동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영업용 자동차가 아니면 모든 유상운송 행위를 금지하되 출·퇴근 경로가 비슷한 사람들이 기름값 등을 모아 한 대 차량으로 이동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운전자, 탑승자 모두가 출·퇴근 중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쟁점이 되는 출·퇴근 시간은 '주거지에서 사업주가 지정한 장소까지 이동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경직된 법 해석 대신 출·퇴근 시간이 사업장마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근로기준법상 탄력적·선택적·사업장 밖·재량 근로시간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풀어준 것이다.

이 판례를 응용하면 카풀 앱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요건이 도출된다.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주거지와 회사 위치를 각각 입력받은 뒤 수시로 변경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운전자가 회사 또는 거주지까지 남은 잔여 거리 이상을 새롭게 이동, 탑승자를 태우는 것도 막아야 한다.

탑승자가 출·퇴근 방향과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 역시 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이 같은 단서를 카풀 앱이 지킨다면 '불법'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김평호 여해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스마트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현 가능한 시스템”이라며 “이들 단서에서 벗어난다면 유상운송 알선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