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출을 떠받쳐온 조선해양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수주전에서 중국에 패했고, 그동안 거의 독식하던 원유생산 플랜트 건조도 싱가포르에 추격을 허용했다. 안으로는 수주부진으로 인한 매출 하락과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구조조정 한파 속에서 고용인원은 20만명에서 11만명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수출 효자산업이 졸지에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전자신문은 대한조선학회, 한국해양공학회와 공동으로 '조선해양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학연 전문가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세계 1위에 올랐던 한국 조선해양산업의 위상 회복을 모색하는 자리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조선해양산업의 국가 경제 기여도는 여전히 높다”며서 정부 차원의 중장기 산업 활성화 대책을 주문했다. 2~3년 전 수주량이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당장 내년 건조량이 사상 최저 규모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대비해 특별 단기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가나다 순)
△반석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연구원(대한조선학회장)
△송하철 국립목포대 교수
△유병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
△조상래 울산대 교수
△조효제 한국해양대 교수(한국해양공학회장)
◇좌장(조상래 울산대 교수)=조선해양산업은 40여년간 수출 효자산업이자 국가 주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 상황을 볼 때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먼저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 현주소를 정확히 진단해보자. 세계 조선해양산업 침체 속에서도 최근 3년간 수출기여도는 7%대를 유지했다.
◇유병세(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조선해양 수주량은 2009년부터 저조하다가 지난해부터 조금씩 회복세다. 하지만 여전히 일감은 부족하다. 중장기 예측에 따르면 2020년 이전까지는 연 3000만CGT(보정톤수)를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2700만CGT 선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대 초반 1만3795DWT(재화중량톤수)를 기록한 세계적인 발주 호황세도 2020년대 중반은 지나야 다시 올 것으로 보인다.
◇조효제(한국해양대 교수)=수주도 문제지만 매출 하락이 심각한 상황이다. 내년에 건조량이 바닥을 치면 조선 협력사, 연관 산업까지 무척 어려운 한 해를 보내게 된다. 수주 회복뿐 아니라 당장 먹거리가 없는 내년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 유병세=그렇다. 기업 매출 하락은 산업 전반의 붕괴를 걱정할 수준이다. 현재 수주 잔량이 1500만CGT에 불과하고, 내년에는 이마저도 700만CGT로 떨어진다. 1000만CGT 건조에도 국내 기자재 업계가 이리 어려운데 700만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송하철(국립목포대 교수)=조선해양산업의 밝은 이미지가 많이 퇴색했다. 전체 수출 7%를 책임지고 있는데도 최근 예측은 어둡다. 2000년대 초반에 조선해양산업 조정기를 예상하는 연구보고서들이 나왔다.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은 꾸준히 성장만 했지 구조조정을 겪은 적이 없다. 당시 2020년을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온 것이다.
산업 위기는 결국 수급 불균형 때문이다. 우리 조선해양산업은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세계 유가하락과 경제 상황이 더해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1위 자리를 뺏기면 곧 망해버리는 듯한 분위기다. 자동차산업은 세계 1위가 아니어도 잘 나가고 있다. 세계 5, 6위권의 자동차는 현재 조선보다 더 많이 수출한다.
◇반석호(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연구원)=송 교수 말처럼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 위기는 내부보다는 글로벌 상황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해외 선주나 선사의 건조 단가 인하 요구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내년에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조선해양산업은 지속 성장이 가능하고, 여전히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좌장=과거 세계 시장에서 조선이 부진할 때 새로이 해양플랜트 발주가 늘어 이를 상쇄했다. 향후 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우리의 수주 경쟁력은 어떨지 의문이다. 당장의 위기에도 대응해야 하고, 시장 정상화 시기도 대비하는 복합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수주 시장 변화를 놓고 글로벌 조선해양산업의 주도권 이동 시그널이라는 해석도 있다.
◇반석호=현재의 수주 부진은 가격이 안 맞거나 외부의 여러 다른 요인이 있기에 주도권 이동의 시그널로 보기는 어렵다.
◇조효제=조선해양은 전후방 산업을 연결하는 허리산업이다. 세계 물량 30%를 수주하고 건조할 잠재력이 있고, 당연히 수주해야 한다는 자신감 속에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국의 LNG선과 대형 컨테이너선 수주 경쟁력에서 볼 때 세계적인 기술 평준화는 막고 싶어도 못 막는 추세다.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기술자와 이로 인한 기술 이전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유병세=조선업 주도권 이동의 시그널은 아니지만 전환의 시기로 보인다. 과거 우리가 일본과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요인은 가격 경쟁력이었다. 가격 다운 전략으로 일단 시장에 진입하고 건조 기술을 확보하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제는 중국과 싱가포르 등이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요소를 발굴 적용하면서 경쟁력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하면 향후 20년, 30년을 계속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송하철=업계 전반은 어렵지만 특정 업체는 계속 수주량을 늘려가고 있다. 요인은 자기만의 특화 선박을 설계 건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확보는 이런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좌장=저가로 수주한 후 건조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이익을 남겼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원가를 낮출 것인가를 적극 고민해야 한다. 조선업 경영진 과제다. 하지만 과거 일본의 구조조정 방식을 따라서는 안 된다. 당시 일본은 모든 부서마다 일률적으로 30%씩 조정했는데 결국 자체 조선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우리의 구조조정 방식은 달라야 한다.
◇조효제=단가 경쟁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일본은 엔지니어링 회사를 필리핀에 세워 설계 물량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단가를 낮추고 있다. 우리는 유한회사나 전문 컨설팅 기업 설립과 운영을 정부가 지원해 구조조정으로 밀린 고급 기술자들이 다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좋겠다.
◇유병세=원가 절감에는 업계 표준화 등 여러 방안이 있다. 어떤 국가나 기업이라도 다 해야하는 당연한 일이다.
◇좌장=조선해양산업의 기술 혁신 방향을 살펴보자. 최근 '친환경, 스마트, 서비스 연계, 에너지 믹스' 등이 키워드로 등장했다.
◇반석호=이중 선체 구조와 기술이 새로운 조선 수요를 만든 것처럼 환경 문제는 조선해양산업의 중요 이슈다. 선박 안전성과 함께 환경 문제 해결이 핵심 경쟁 요소가 될 것이다. 스마트 선박은 안전과 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한 것으로 정부 지원도 스마트 선박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서 다소 소홀했다. 안전과 환경 기술은 조선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 필요한 기술이다.
◇송하철=기술뿐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빅데이터를 접목해 설계에서 운항까지 전체를 서비스 상품으로 만드는 것처럼 새로운 시장 지배력을 가질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을 발굴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유병세=신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에서 중요한 것이 협업이다. 현재 회자되고 있는 융합 기술은 기업이 단독으로 만들어 적용하기 어렵다. 기업간 협업, 산학연 협력이 중요하다. 유럽은 작은 규모에서도 기자재 업체, 대형 조선소, 연구소가 협력해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 보완한다. 산산협력은 물론 산학연 협력이 약하면 신기술 개발과 적용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조효제=스마트 선박 개발은 당연하고 반드시 나가야 할 방향이다. 문제는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규정에 대한 연구와 접근이 부족하다. 유럽과 일본은 관련 규정을 연구하고 주도적으로 바꿔가면서 시장을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좌장=스마트 선박은 친환경, 안전 등과 여러 분야와 직결된다. 그래서 해운사의 다양하고 많은 데이터를 개방·공유할 수 있다면 시너지를 거둘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유도했으면 한다. 조선해양 ICT융합은 실천이 중요하다. 이제 정부 정책을 짚어보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와 지역 공약은 어떤가. 조선해양산업 지원 정책의 약화, 관련 인프라 구축에서 지자체간 과당 경쟁의 목소리가 있다.
◇반석호='해운·조선 상생으로 해운강국 건설'이 100대 국정과제 80번에 포함됐다. 조선사와 해운사, 중소기업 간 세부 협력 방안을 수립해 세부 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실질적으로 조선 해운이 협력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 한진해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80번 과제를 보완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해운쪽에 치우쳐 조선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좌장=동의하면서 부처간 칸막이부터 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80번 과제 주무 부처는 해수부이지만 산업부와 과기정통부, 중기부 등 협력이 동반돼야 한다.
◇송하철=정부의 정책 입안과 실행 계획의 시각도 바뀔 때가 됐다. 사실 호황기 때는 정책이 필요 없다. 산업이 어려울 때 정책도 필요한 것이다. 전통 주력산업이 저물었으니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조선업을 사양산업이라 말하는 이도 나온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접목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없다. 현장의 중소 조선 및 기자재 업체에 신산업에 뛰어들라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단기 생존 정책과 중장기 부흥 정책이 같이 나와줘야 한다.
◇조효제=정책을 수립하면 실행 로드맵이 나온다. 로드맵을 만든 후에는 이 로드맵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성과를 정리한 피드백도 필요하다. 지자체 과당 경쟁을 해소하려면 산업계 리더의 집단적 공감대가 필요해 보인다. 리더의 객관적 협의 아래 지역 특성을 반영해 특화 분야를 정하고, 이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전문성과 특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보자. 예를 들어 부산은 중소 기자재, 울산과 거제는 대형 건조와 플랜트, 전라도는 중소형 선박 등으로 개별 특성을 살려주는 것이다.
◇유병세=과거 정부 간섭이 적었기 때문에 조선업이 세계 1위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번 국정 과제에서는 조선업 지원의 경우 산업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전국 대부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조선해양 지원 인프라에서 국내 산학연, 지자체 간 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국비를 투입하는 대형 인프라 구축은 지역을 넘어 전국 단위에서 접근하고 검토해야 한다.
◇좌장=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이 1위에 오른 배경으로 기본 설계기술의 자립, 기자재 국산화, 건조기술 개발을 꼽는다. 연구개발 지원 인프라 구축은 기존과 중복되지 않고 새로운 기술개발을 수행할 수 있다면 필요한 사업일 것이다.
◇반석호=조선해양이 어려울 때 방산 수요는 나름의 희망이었다. 나아가 함정 제조기술은 독자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안보를 위한 해군력 유지 차원도 조선해양산업 존속은 물론 경쟁력 강화의 근거가 된다.
◇좌장=조선해양산업 잠재력과 활성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가 경제발전과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성장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해결할 과제는 무엇인가.
◇조효제=조선해양기업의 사업다각화를 현실적인가 고민할 시기라 본다. 조선해양은 인프라 투자비용이 높지만 내수를 통해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학계와 연구계는 여러 원천 기술 개발에 기여해왔다. 이제는 수요자, 산업 측면에서 응용기술에 관심을 높여야 할 것이다.
◇송하철=그동안 간과했던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수리, 선박 개조 시장은 우리가 마음먹으면 주도 가능한 분야다. 첨단 기술에 가려 논의가 안 되고 있는 게 아쉽다. 산업 구조조정이나 다각화는 정부 정책이 중요하다. 향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될 수 있는 게 인력이다. 이미 많은 조선해양 인력이 빠져 나갔다. 조선해양 경기가 활황세로 돌아섰을 때 1~2년 내 인력을 확보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점을 고려한 정책이 나와줘야 한다.
◇좌장=공감한다. 대형조선소에서 5년 이후를 내다보며 채용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최근 현대중공업 외에 신규 인력 채용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안타깝다.
◇유병세=우리 조선해양산업은 과거 앞만보고 배 짓는데 주력하며 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앞만보면 큰일 난다. 좌우를 둘러보고 협업,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긍정적인 부분은 제조업 생존은 결국 단가에 달렸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석호=조선해양산업 정책은 철강, 해운, 에너지 등 여러 전후방 산업과 국제해사기구(IMO) 규정 변화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