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표준이 사람 중심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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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이란 말은 위서(魏書)에 나오는 말이다. 양일(楊逸)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흉년에 곡식 창고를 연 혜안을 칭송한 데서 유래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천리안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세계 날씨, 교통 상황을 포함한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정보에 접근한다. 이른바 '초연결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모든 것을 연결하고 지능화한다. 나아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국가와 국가 간 연결을 가속시켜서 의료·금융·교육·문화 등 우리 생활 전반에 걸친 대변혁을 가져온다. 한 예로 화물 배송업체 페덱스는 의약품이나 식품을 배송할 때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배송 상황, 배송 환경, 온도 등 빅데이터를 수집한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유통의 새 시대를 열었다.

플랫폼 비즈니스 구현을 위해서는 기술 측면에서 데이터 통신 방식 등 상호 운용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사회 측면에서는 정보의 수집·활용·보안 등에 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기술·사회 합의 수단이 바로 표준이다.

과거 교통카드가 지역별로 각각 운영되면서 기업의 시스템별 중복 투자와 소비자 불편함이 사회 문제로 제기된 것을 기억한다. 시스템 간 상호 운용성 확보를 위한 표준과 하나의 교통 카드로 전국 어디에서나, 어떤 교통수단이든지 활용하고 싶다는 사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 기술을 현장에 적용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2005년 국가기술표준원이 교통카드 전국 호환을 위한 카드·단말기 간 인터페이스 및 보안 요구 사항 등을 표준화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됐다.

표준화는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보증하기 위한 개별 표준(Stand-alone) 방식에서 기술과 산업 간 융합을 위한 시스템 및 인터페이스 중심(connected-system)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연결성 확보는 표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욕을 내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간 상호 운영성 확보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람 중심의 스마트시티 구현은 불가능하기에 표준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 혁신이 시장에 적시 반영되기 위해서도 표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시장은 공급자 위주에서 개인의 개성과 수요를 적극 반영하는 수요자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됐다. 아무리 기술 혁신이 이뤄낸 유망 산업이라 하더라도 수요자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

또 다른 문제점은 수요자 요구를 반영한 제품이라 해도 유사한 제품이 시장에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요자는 인증 제도를 통해 자신의 필요 또는 연계 시스템에 적합한 제품임을 확인하고 선택하게 된다. 신제품의 시장 진입 보증 수표인 인증 제도를 위해서도 표준은 필수 요소다.

세계 주요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대응을 위해 표준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일본은 '인더스트리 4.0'이나 '신산업 구조 비전' 등에서 정부 차원의 표준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플랫폼 표준화'와 '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한 환경 정비'를 추진 세부 전략으로 수립하기에 앞서 표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도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발족시켜서 4차 산업혁명 종합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각 부처별 실행 계획을 조율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비해 표준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 인식은 다소 미흡하다.

22일 국회와 정부가 손을 맞잡고 '4차 산업혁명 국제표준포럼'을 열어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을 이룰 표준화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국회, 정부와 더불어 ISO, IEC 등 국제표준화기구, 일본과 독일 등 주요 국가 전문가가 참석해 표준 거버넌스와 국제 협업 방안을 공유했다. 정부는 포럼을 계기로, 국제표준화기구, 4차 산업혁명 주도국 및 주요 기술의 수출 대상국이 참여하는 국제포럼으로 정례화해 국제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표준 이슈에 대해 국제적 논의를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클라우드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회장은 “파괴적 혁신과 과학 기술을 활용해 사람 중심의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사람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 중심의 혁신 성장은 이해 관계자의 합의인 표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래의 10년, 아니 100년의 도약을 준비하는 자세로 표준을 중시해야 한다.

정동희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 dhjung@kat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