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박 2일 국빈 방한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언급을 자제하면서 양국 통상 현안은 돌발 변수 없이 기존 프로세스를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두 차례에 걸친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통해 '개정 협상'을 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남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국회 연설에서 한미 FTA 개정 문제와 관련해 단 한 차례 원론적 언급만 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는 군사협력 증진과 공정성 및 호혜의 원칙 하에 양국 통상관계를 개선하는 부분에서 생산적 논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연설을 통틀어 한미 통상문제와 관련된 유일한 발언이었다. 연설문에 '한미 FTA'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비롯한 통상문제를 강하게 언급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국회가 미국의 일방통행식 한미 FTA 개정 추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FTA가 개정될 경우 국회 비준 문제가 부상될 수 있는 만큼 가급적 국회를 자극하려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현재 협정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는 그렇게 좋은 협상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일 뿐 압박 강도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그는 “문 대통령께서 한국 교역협상단에 긴밀하고 협력하고 조속히 나은 협정에 나설 것을 지시한 것에 사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와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국내 절차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위해 '통상조약의 체결 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제적 타당성 평가, 공청회, 국회 보고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는 오는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어 한미 FTA 개정 경제적 타당성을 논의하고, 이해당사자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국회 보고 절차까지 마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르면 내년 초부터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의 중장기 무기 구매 계획에 대한 긍정적 얘기가 오간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을 완화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FTA 재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당초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 미국산 무기 구입도 대미 무역적자 감소에 긍정적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또다른 통상 압박카드를 꺼낼 필요성이 줄었다는 것이다.
국빈방문을 계기로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한미 통상장관회담은 개최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7일 트럼프 대통령 일정이 지연되면서 통상장관회담은 따로 열지 않고, 확대 정상회담과 만찬 전·후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에 간단한 논의만 이뤄졌다”고 전했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