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 '조급증'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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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시장 화두로 떠오른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에 조급증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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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장에서는 이통사와 제조사 유통망을 분리해 경쟁 시키면 단말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며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 법안 2건이 발의, 국회 논의에 따라 당장이라도 제도가 도입될 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 진행 과정에는 완전자급제가 불러올 부작용 관련 면밀한 검토가 빠져 있다. 철저한 통신비 인하 효과 검증 없이는 '통신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확실하지도 않은 예상만으로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법 개정만이 정답인가

국회는 단말기 자급제가 시장 문화로 정착된 해외와 달리 법을 개정, 단말기 자급제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은 30%, 북미는 64% 이용자가 이통사에서 휴대폰을 구입하지만 우리나라는 90%가 이통사에서 구입할 만큼 독점 체제를 이루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완전자급제는 이 같은 불균형을 한 번에 해소하기 위해 법으로 이통사의 휴대폰 유통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통사는 통신 서비스만 판매하고 단말기는 전문 유통점이 판매하도록 의무화된다. 김성태 의원(안)은 이통사 직영이 아닌 영세 대리점에 한해 단말기 판매를 허용하고, 박홍근 의원(안)은 대형 제조사의 유통을 금지하는 등 세부안에서 차이는 있다.

그러나 시장 편중이 심하다고 해도 법으로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법은 한 번 정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법 적용 기간에는 부작용이 지속된다.

담배와 주류 등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치는 상품을 제외하고 상품 판매를 시장 자율이 아닌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규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보고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다.

◇요금 인하 효과 증명이 선결 과제

국회는 단말기 자급제 법 도입의 가장 큰 이유로 '가계통신비 절감'을 내세웠다. 이통사가 단말기 판매에서 손을 떼면 기존 유통망에 지급하던 리베이트 등 마케팅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고, 이는 요금 인하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통 3사는 2016년에 마케팅 비용으로 약 7조6000억원을 집행했다. 그 가운데 광고 등을 제외한 약 3조원이 유통망 비용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홍근 의원은 마케팅 비용 절감 효과와 단말기 가격 인하로 약 4조300억원의 가계통신비 절감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시 이통사의 요금 구조 변화는 불가피하다. 현재 일반 가입자는 2년 약정을 맺고 단말기 지원금을 받거나 선택약정 요금 25% 할인을 받는다.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약정 계약 체결에 따라 요금을 할인하는 구조로 일원화된다.

이때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현재보다 더 통신비를 절감하려면 이통사는 적어도 25%보다 높은 약정할인율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통사가 이 같은 할인율을 제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이통사는 25% 선택약정 할인율 반대 과정에서 행정 소송을 검토할 정도로 할인율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등 자발 할인율은 높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통사에 할인율을 높일 강제 장치가 없고, 도입한다 하더라도 과도한 규제 논란을 겪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통사가 현재 25% 선택할인율을 유지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영업 이익을 달성하고 있다”면서 “완전자급제 도입 시 적어도 롱텀에벌루션(LTE) 시장에서 만큼은 절감한 마케팅 비용으로 할인율을 높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통사가 현재에 버금가는 가격 인하 정책을 유지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만 완전자급제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통사가 절감한 마케팅 비용으로 통신 요금을 낮출 것이라는 전망에는 회의 시각이 대부분이다.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됐지만 지원금을 높이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말기 가격 인하 가능성 의문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제시한 이통 유통 시장 투명화와 다변화 문제를 놓고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양한 제조사와 전문 유통점이 시장에 진출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권이 개선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독점 체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완전자급제 찬성 측은 제조사도 유통 시장에 진입하면서 단말기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단말기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 2분기에 522달러로 해외 평균 205달러에 비해 갑절 이상이다.

그러나 이는 단말기 가격 자체가 비싼 결과라기보다 고가 단말기를 선호하는 시장 문화에 따른 결과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사는 글로벌 전략상 우리나라에만 출고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출고가를 그대로 둔 채 유통점 단위에서 할인에 나설 수 있지만 가능성은 의문이다. 유통점이 단말기를 할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통사가 마케팅 비용을 분담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조사가 비슷한 재원을 투입할지는 미지수다.

유통망이 자체 재원을 투입해 할인할 수 있지만 이용자 차별이 예상되면서 새벽에 휴대폰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이 재현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정책이 필요하다. 단말기 가격 할인율도 정부의 명확한 연구와 더불어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시장 구조 수술에 비유할 수 있다. 수술 전에는 몸 상태에 관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법률 전문가는 예상 부작용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 신중하게 법 추진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어떤 정책이든 필연으로 장단점이 있는 만큼 정책을 만들 때는 출발점에서부터 예상 결과에 대한 전문 분석·평가가 있어야 한다”면서 “급작스런 정책 추진은 막대한 사회 비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