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히든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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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많은 토론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큰 것 같다. 마치 전략 없는 전쟁이나 지도 없는 항해와 같아서 미래 불안감이 크다고 한다.

실제로 AI, 로봇, 빅데이터 등 핵심 분야를 따져보았을 때 앞으로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뒤처진 기술을 열심히 따라간다고 해도 과거와 같이 추격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변화의 길목에서 뒤처지는 일만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크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아주는' 전략과 히든카드다.

산업혁명이란 역사학자 토인비가 정의했듯이 '기술혁신과 그에 수반해 일어나는 사회·경제구조의 변혁'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변혁은 기술 진보와 함께 반드시 시장 대응이 따라와야 발생할 수 있다. 즉 기술공급이 밀어내는 힘(Technology Push)과 시장수요가 당기는 힘(Market Pull)이 결합돼 폭발적 변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어느 일방의 힘으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제조공정 및 제품 혁신의 단계를 넘어 비즈니스 모델과 플랫폼 경쟁 단계에 들어선 4차 산업혁명에서는 시장의 당기는 힘이 강해진다.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 존재하면 기술과 자본이 쉽게 따라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원천 기술이 부족하고 과학기술 인력이 부족한 우리 입장을 고려할 때 히든카드는 바로 시장수요 부문에서 찾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대표주자인 로봇 산업을 예로 보자. 한국 정부는 미래 유망산업으로 인식하고 2010년 이후 수천억원 연구개발 투자를 감행했지만 아직 제자리걸음이란 평가다. 반면에 일본의 대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가 한국 상륙을 앞두고 있다. 이달부터 6개 기업 주요 매장에 시범 운영한다. 각종 로봇대회에서 수상하고 영어교사 로봇 '잉키'를 개발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로봇강국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과연 뒤처진 기술력 때문에 이제부터 외국산 로봇을 써야 하는 것인가? 사실 지금까지 1만대를 판매한 '페퍼'는 기술 성능 면에서 앞선 다른 로봇에 비해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평가다. 이보다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시장수요 측면에서 매력을 끈 것이다. 우리는 왜 1만대, 아니 10만대 이상 팔리는 로봇을 왜 못 만드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가진, 마치 사람과 똑같은 로봇으로는 경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K팝 콘텐츠를 탑재한 한류 로봇은 비록 기계적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세계 1억명이 넘는 한류 팬들을 상대로 매력 있는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시장이 당기는 힘은 종종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낸다. 최근 한 재미교포가 아마존닷컴에 출시한 '케이팝사전'은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1만부 넘게 팔리면서 한글 세계화의 역군이 되었다. 이러한 히든카드는 경제·사회 대변혁이 예고된 미래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신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접근방식과 자세에 있다. 급격히 늘어난 경제규모와 함께 거대해져 버린 관료적 의사결정이나 최고 과학기술만이 혁명을 만들 수 있다는 편향적 자세로는 결코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을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장의 당기는 힘은 실패 없이 한 번에 획득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히든카드는 뛰어난 하드웨어 제조능력과 함께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당기는 힘'을 활용하는 데 있다. 주목할 것은 이 힘이 과거와 달리 평범한 개인도 활용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세계 5대 혁신기업인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을 예로 보아도 최고 과학기술자나 대기업이 아니라 비전과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창업가들이 설립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우리의 핵심 전략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혁신창업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벤처육성정책에 의해 4만개가 넘는 벤처기업을 육성했지만 초기 창업활동 비율로 측정한 한국의 창업가정신 수준은 조사 대상국 64개 중 52위에 머물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청년의 창업회피 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 antonio@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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