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출범 100일]'무작정 탈원전', 에너지 대계 부실화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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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출범 10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탈원전·탈석탄이라는, 파급력이 역대급 에너지 정책을 펼쳤다. 역대 정부를 돌아봐도 초강수 행보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는 에너지신산업 중심으로 공급 위주 정책을 효율과 수요 관리로 전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원전과 석탄화력을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공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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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노무현 정부 때도 탈원전 요구는 있었지만 현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미래 지향적 구상이었으나 제조업 기반 경제 구조로 된 국내 여건상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부담이 컸다. 과거 정부와 비교해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모험이다.

문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부터 시작한 탈원전·탈석탄 계획은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여러 에너지 정책에 반영됐다. 문재인 정부 어느 분야 정책보다 빠른 속도로 실제 정책으로 연결됐다.

폐지 계획이 잡힌 10개의 석탄화력 가운데 8기가 지난 6월 한 달 동안 가동을 중지했다. 내년부터 수급 여유기인 봄과 가을에는 정기 가동 중지에 들어간다.

국가 에너지 계획의 근간인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국가 2030년 기준 장기 수요 전망을 종전보다 11.3기가와트(GW) 낮췄다. 적정 예비율도 약 2%포인트(P) 줄어들 것이란 가정 아래 수립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꼽힌 탈원전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로 첫발을 내디뎠다. 공론화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의 성패를 가름할 지표로 관심을 받고 있다. 산업계는 신고리 공론화 결과에 따라 탈원전 정책의 추진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과 신고리 5·6호기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이미 국민은 신고리 공론화를 탈원전 정책의 핵심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신고리 공론화 작업이 5·6호기 건설 영구 중지로 결정 나면 탈원전 정책은 강한 국민 지지를 기반으로 속도를 낼 수 있다. 건설 찬성 결정이 나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속도감을 잃는다. 탈원전이 국민이 원하는 방향인지 근원적인 문제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신고리 공론화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찬반 의견 수렴 과정에서 근소한 차이로 결론이 나는 경우다. 최근 관련 설문조사에서 양측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찬반 결과와 상관없이 양쪽의 표결 수에 큰 차이가 없으면 정부 입장에선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건설 공사 중단과 재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바라보는 에너지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에너지 업계는 이번 정책을 '타이밍'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한편으론 '배부른 계획'으로 평한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원전과 석탄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과연 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탈원전 정책은 지금 당장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전기요금 인상 같은 부작용도 없다고 얘기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원전은 안전하고 값싸다”라고 말하던 정부가 돌연 “원전과 석탄화력은 비싸지고, 신재생에너지가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산업계와 정부 부처의 미래 에너지 시장 전망에 괴리가 생겼다.

에너지 업계는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이 매우 공세적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명분도 단언적인 수준이라는 데 우려를 표했다.

원전과 석탄의 발전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지난 정권에도 있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 비중을 줄이고, 7차 전력수급계획에선 석탄화력 계획을 취소하며 신재생을 늘렸다. 역대 정부는 이런 방향 속에서도 전력 수급 불안과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속도를 조절했다. 반면에 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은 과거 정부가 고민하던 불안 요인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추진되고 있다.

이상적이지만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한계라는 게 에너지업계 중론이다. 연료비가 없는 신재생 전기가 국가 전력을 책임지고, 원전과 석탄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나의 목표 지향점일 순 있지만 이를 실현할 기술과 여건을 갖춘 후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견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모두가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싶지만 여건에 따라 차로를 선택하기 마련”이라면서 “에너지 정책 역시 최고의 대안을 말하기보다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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