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칼럼]文 '탈원전'에 과학자는 없다

“필요한 시기에 훌륭히 역할을 다 했음에 애써 위안 삼아 봅니다. 그래도 좌절감은 숨길 수가 없네요.”

원자력계에서 20년 넘게 연구한 과학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새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자신의 응축된 감정의 표현이었다. '필요할 때만 쓰고 단물 빠지니깐 버려지는 신세'를 한탄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을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 1호기 가동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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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 참석해 아이들과 기념 촬영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자력 산업계 의견은 구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이룬 원천기술 경쟁력과 자부심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원자력계 과학자는 20여년 동안 핵연료 피복관 소재, 원자로 냉각제 펌프 등 핵심기술을 국산화했다. 연구 결실을 직접 목격하며 뿌듯함도 느꼈다. 일부 나라는 우리나라의 원천기술 확보를 저지하기 위한 소송도 걸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원전 기술 경쟁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 그것도 잠시, 이제는 개발한 기술이 사장될까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문 대통령은 모든 정책의 중심에 '사람'을 뒀다. 국가의 경영 원칙을 '인본 경영'에 맞췄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에서 '사람'이 배제됐다. 원자력은 나쁘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됐다. 국민 안전을 앞세우면서 과학자의 피와 땀, 자부심은 외면했다.

한 원자력 연구원은 “나쁜 원자력이 아닌 국가에 기여하는 '착한 원자력'이고 싶다”고 했다. 새 정부 경제정책 모토인 '착한 성장'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이야기다.

원자력계 과학자들은 접안이 불허되는 연안 앞바다에서 난민 처지가 됐다. 문 대통령은 이들 과학자 의견에 귀기울여야 한다. 보듬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미래기둥이다. 원자력공학과 학생들의 꿈까지 가로막으면 안 된다.

신고리 공론화위원화가 24일 공식 출범한다. 다 잃기 전에 더 얻을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원자력계는 소외됐고 배제됐다. 이젠 공론화과정에서 당당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논쟁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신고리 중단을 결정지은 것이 아니다.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초점을 두기보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민주적 절차로서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했다. 진정성 있는 발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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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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