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는 중국 당나라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그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는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란 소절로 시작한다. 호우지시절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라는 뜻이다. 때맞춰 내리는 단비는 만물을 적시고 모든 것을 피어나게 한다.
지금 우리나라 소재·부품업계가 호우지시절을 만났다. 디스플레이·반도체 산업 호황에 후방산업 전반이 혜택을 입고 있다.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전방 소자기업이 폭증하는 수요에 맞춰 설비 확충 경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올해 연간으로 두 배 가까운 실적 증가를 예상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의 표정에서 이런 현상이 모두 확인된다. 오히려 기대치가 너무 높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업계의 호황을 만들어 낸 건 이른바 '슈퍼 사이클'이라 불리는 시장 흐름의 영향이 크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두 폭주하는 수요를 공급이 쫓아가기 힘들 지경이다.
슈퍼 호황은 불현듯 찾아온다. 언제 다시 올 지도 알 수 없다. 짐작만 할 뿐이다. 호황기라고 모든 기업이 수혜를 보는 것도 아니다. 준비된 기업만 호시절을 누릴 수 있다. 기술 역량을 높이고, 제품을 차별화한 기업만 기회를 잡는다. 우리나라 후방 기업의 승승장구가 반가운 까닭도 그동안 착실히 기술력을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만난 글로벌 화학기업 관계자는 100년이 넘는 연구 노하우가 기술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 기업은 화학 기초 지식이 부족하던 수세기 전부터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력을 하나하나 연마했다. 현재 상용화시킨 기술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기반을 닦고 연구를 시작했다. 과정이 더디더라도 투입된 시간과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래 축적된 기술력은 후발 주자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지금 세계 시장에서 연간 조 단위의 매출을 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분야는 완제품이 아니라 기술력이 축적된 부품 산업뿐”이라고 강조했다. 잘나가는 후방산업이지만 긴장의 끈을 늦추진 말아야 한다. 좋은 시절에 풍성한 자금을 기술 개발에 과감히 재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찾아올 호우지시절에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