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8개월째 연 1.25%로 동결했다. 가계부채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주의 영향으로 경제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커지는 만큼 우선 관망하자는 흐름이다.
23일 한국은행은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25%로 유지하기로 했다. 국내외 정치·경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섣불리 기준금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작년 141조원이나 늘면서 사상 최대로 늘어난 가계부채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다. 트럼프노믹스에 따른 미국 금리 방향이 상승 쪽으로 무게가 기운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준은 작년 말에 이어 올해도 2∼3차례 금리를 추가 인상할 전망이다. 내외금리 차 축소로 이어져 자칫 국내에 투자된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도 있다.
연준이 이날 공개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참석자들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꽤 가까운(fairly soon)` 시일에 이뤄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도 불안 요인이다. 미국이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 최근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4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앞두고 금통위가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준금리 조정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한국은 현재 환율조작국 지정의 3가지 요건 중 2가지를 충족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4월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최근 떠도는 4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다만 종합무역법을 활용하거나 환율조작국 세부 지정 요건을 바꿀 경우 가능성이 남아 있어, 상시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외부 요인들을 종합할 때 한은이 당분간은 기준금리를 움직이지 않고 현 수준에서 묶어둘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금통위 내부에서 실물경기를 보완화기 위해 통화정책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금융 안정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이날 내수 진작 대책을 발표하면서 “최근 소비가 꺼지는 것을 보면 (1분기 성장 전망을)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1분기 성장률은 0% 중반 정도로 봤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수 진작 정책을 내놓을 만큼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에서 통화정책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부채 문제 등 금리 정책을 움직일 만한 동인은 많지 않다”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금리 인상도 쉽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표] 가계 대출 및 주택가격(자료 : 한국은행)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