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블랙박스]<16>한국게임의 철학은 무엇인가?

도쿄에서 열린 게임쇼에서 피카츄를 만났다. 피카츄는 포켓몬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주인공이 직면한 위기일발의 순간에 `피카 피카`를 외치며 백만볼트 전기로 적을 박살낸다. 어린이들은 이런 피카츄를 보기만 하면 환호하지만 사실 난 팬은 아니었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 등장한 피카츄(정확하게는 사람 인형)와 마주하면서 생애 처음 캐릭터를 안아주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1.4m 정도 키에 보드랍고 통통한 노란색 몸뚱아리, 커다랗고 순진해 보이는 눈망울을 가진 피카츄는 행사장의 모두를 열광시켰다. 그 속에는 나도 있었다.

피키츄는 분명 몬스터다. 몬스터는 괴물을 뜻한다. 괴물이란 인간을 저주하고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모든 사악한 행위를 한다.

피카츄는 다르다. 피카츄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인간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몬스터와 싸운다. 이 점에서 그는 자신의 종족을 배신하고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불행한 운명`의 존재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주인공 이누야샤와 같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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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중앙대 교수

포켓몬스터는 지금 글로벌 스타가 됐지만 1998년 미국 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만 해도 미국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켓몬은 선과 악의 대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피카츄는 더욱 그랬다. 쥐를 모티브로 한 몬스터인데 생긴 것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미국 유통업자는 수정을 요구했다. 피카츄를 비롯한 몬스터는 `몬스터`답게 사악하고 거칠게 그리라는 것이다. 닌텐도는 내부에서 심각하게 회의를 거듭했다.

마침내 수정요구를 거부하기로 결론 내렸다. 포켓몬 스토리는 물론 피카츄에 대한 이해가 미국과 일본이 다르다는 인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모든 개념이 이분법에 의해 구분된다. 천사와 악마, 선과 악, 정의와 사악 등의 이분법이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자연숭배에 기반을 둔 `800만의 신`이 머무는 다신교의 나라이다. 신도가 그렇다. 일본 방식은 흑과 백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는 모호성에 바탕을 둔다.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인도 때로는 선한 행동을 한다.

서구의 범죄 드라마는 마지막에 선의 상징인 주인공이 반드시 악인을 응징해야 끝나지만 일본 드라마는 꼭 그렇지 않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조차 무슨 사연이 있다. 마지막에는 참회하며 스스로 양손을 내밀어 체포되는 스토리 전개가 많다.

인간사회 선악의 공존, 악인과 선인의 상대화는 일본 콘텐츠 핵심 철학이다. 이 철학에 지금 서구는 열광한다.

우리의 게임 철학은 무엇일까. 일찍이 리니지 개발자 송재경은 리니지의 본질을 묻는 나에게 `권선징악`이라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분명 권선징악은 보편적인 인간의 테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권선징악을 넘어선 한국적인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만의 철학이 있을 때 한국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서구에 접근할 수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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