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한국 반도체 업계 ISO26262 제2판 대응 안 했나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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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인피니언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 강자로 ISO 26262 표준에 적극 대응하고 있따.

한국 반도체 업계가 ISO 차량 반도체 안전 설계 가이드라인(파트11)에 관심을 두지 못하면서 차세대 자동차 시장에서 실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가이드라인 대응을 못한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인지를 놓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인텔, 퀄컴, 르네사스 등 세계 반도체 업체는 지난 수년 동안 ISO 26262 제2판 차량 반도체 안전 설계 가이드라인(파트11) 제정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치열한 기술 논쟁을 펼쳤다. 내년 1월이면 이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국제 표준이 정식 발효된다.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체는 가이드라인 작성 논의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나마 관심을 기울인 업체는 LG그룹 계열 팹리스 반도체 업체인 실리콘웍스 정도다.

메모리 시장을 장악한 삼성이 국제 표준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은 당장 매출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수년 동안 진행된 ISO 26262 반도체 설계 가이드라인 작성의 논의 현장에 삼성 관계자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현업 실무진은 이 사안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내 일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담당 임원이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장기간 대응이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독일 아우디에 엑시노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공급키로 했다. 그러나 이 표준에 대응하지 못하면 추가 수주는 물론 라인업 확대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가 주력이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새다. 그러나 자동차 분야로 영역을 확장할 때 정보 부족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 대응해도 이미 늦었다. 고장률 예측 등 가이드라인을 맞추려면 초기 기획부터 설계, 생산까지 프로세스 전반에 변화를 줘야 한다. 르네사스나 인피니언이 벌써부터 ISO 26262에 대응한다는 제품군을 내놓을 수 있게 된 이유는 초기 표준화 과정부터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별도 조직을 구축하지 않으면 시시각각 바뀌는 자동차 분야의 표준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별도 조직을 구축하고 ISO 26262 표준에 대응하고 있다.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는 대응을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국내에서도 차 시장을 공략하려는 팹리스 업체가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표준화 관련 인력을 따로 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자원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부분 프로젝트 착수 이후 해외 인증 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하지만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돈만 날렸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기업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12일 “정부를 주축으로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에 ISO 26262 제2판 관련 내역을 상세하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기술력은 있지만 여력이 없는 유망 팹리스 업체를 대상으로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도록 한다면 반도체 신 수요처인 자동차 시장에서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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