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다마스쿠스의 검과 3D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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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국 전자부품연구원 3D프린팅사업단장

십자군이 팔레스타인에서 겪은 모험을 그린 소설 `부적` 속의 월터 스콧 경은 `사자왕 리처드`와 `사라센 왕 살라딘`의 만남을 인상 깊게 묘사했다. 적대 관계의 두 왕은 자신의 검을 자랑한다. 리처드는 직선형의 무거운 양손 검의 강도를 과시하기 위해 미늘창을 쪼갰다. 살라딘은 비단 방석을 자신의 신월도 위에 얹어 놓고 잡아당겼다. 방석이 갈라지자 유럽인은 속임수로 의심했고, 살라딘은 공중에서 얇은 천을 베어 검의 예리함을 재확인시켰다.

다마스쿠스의 검은 우중충한 푸른빛을 띠며, 수천 개의 구불구불한 선이 좁게 휘어진 검신에 엷게 새겨져 있다. 이른바 `모하메드의 사다리`라 불리는 특유의 무늬다. 다마스쿠스의 칼과 갑옷은 전설의 물건이었고, 유럽 대장간에서는 천년 동안 매혹과 좌절의 상징이었다.

다마스쿠스 검 이야기에서 국내 3차원(D) 프린팅 기술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3D 프린팅의 역사는 매우 짧다. 3년 남짓한 시간에 미국 표준 7가지 가운데 4가지 출력 방식의 프린터가 출시됐고, 순수 국내 기술로 출력된 조형물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칼이라고 다 같은 칼이 아니듯 칼 형상을 만들었다고 칼을 만든 것은 아니다. 냉정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 주소다.

우리나라 3D 프린팅 산업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시장`이다. 제아무리 우수한 신기술이라 해도 시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미 검증된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기술 영역에서 신기술이 자리 잡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첫 번째 과제는 우리가 적용할 품목을 발굴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주물의 거푸집을 3D프린터로 출력하는 주물사 프린터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는 주물업이 처한 고용 현실과 복잡한 모양의 주물 등에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는 3D 프린팅과 절삭 기계를 결합한 복합 가공기다. 깎기만 하던 가공기에 쌓는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후처리가 필요한 3D 프린팅의 단점과 절삭 위주 가공기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다. 3D 프린팅 기술 공급자가 아닌 산업 현장의 수요자 목소리를 반영, 무엇을 만들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

산업 현장 수요자도 3D 프린팅에 있는 기술의 차이점을 먼저 인지해야 제대로 된 수요를 발굴할 수 있다. 적층 가공에 기반을 둔 차별화한 제조 공법은 디자인 자유도를 큰 특징으로 삼는다. 특별한 추가 비용 없이 표면적이 넓은 구조를 쉽게 만들어 열 교환이나 촉매 반응에 유리한 부품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벌집 구조나 격자 구조를 도입한 위상 최적화 방법을 이용하면 경량화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 사례처럼 여러 부품을 일체화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고, 생체 모방 구조를 용이하게 제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경사 기능 구조, 다공성 구조, 복잡한 내부 구조 구현에 장점이 있다. 적층 가공의 디자인 요소를 부각, 3D 프린팅의 기술 차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마지막 과제는 검증이다. 프린팅된 출력물을 실제 산업에 적용하려면 출력물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검증으로 3D 프린팅 공정이 개선돼야 한다. 3D 프린팅 3대 기술 요소인 장비, 소재, 소프트웨어(SW) 평가는 프린터가 출력하는 조형물로 검증된다. 장비별, 품목별 출력 단가와 출력 시간 검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실물 검증 평가뿐만 아니라 경제성 검증 평가까지 겸해야 하는 이유다.

앞에서 제시한 수요 발굴, 디자인 차별성, 검증 세 가지 과제 모두 공히 현재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관심과 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산업과 연계되지 못하면 3D 프린팅은 `또 하나의 지나가는 기술`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진국 전자부품연구원(KETI) 3D프린팅사업단장

jkshin@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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